80대 중반 시골 아버님의 교훈

오치남 남도일보 편집국장의 ‘우다방 편지’
80대 중반 시골 아버님의 교훈
 

지난 주말 전남 보성 조성 시골집에 다녀왔다. 지병인 파킨슨병에다 합병증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한 어머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10년 가까이 병수발을 하고 있는 80대 중반의 아버님도 지치셨는지 지난달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가슴이 미어졌다. 두분 모두 이 세상을 떠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아버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갑질 논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몹쓸 짓을 하느냐고 화를 냈다. 지금까지 관행처럼 묵인됐던 악습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공관병을 마치 노예 취급하는 장성이나 부인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공관병 제도를 없애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은 요즘 계속 터지고 있는 대기업 회장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막말, 폭언, 갑질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도 했다.

평생 시골에서만 살고 있는 아버님 말씀의 결론은 군대 장성이나 하사관이나 일반 병이나,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 간부나 운전기사나 똑같은 인격체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6·25전쟁 휴전 직후인 지난 1954년 4월부터 58년 9월까지 4년 5개월동안 공군 병으로 복무했던 아버님은 인간 취급받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른바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면서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기도 힘든 시기였기에 물자보다 못한 군인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고 한다. 구타는 항상 따라다녔다고 했다. 인격을 찾거나 논할 처지가 못됐다는 것이다. 1983년 6월부터 1985년 9월까지 필자가 육군 병으로 복무할 때도 전군에서 구타금지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했으나 ‘몽둥이 찜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훈련소 시절 ‘점심시간 5분’은 악몽과도 같았다. 식당에 조금 늦게 도착한 훈련병들은 ‘식사 시작’이 곧 ‘식사 끝’이었다. ‘밥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은 사치에 불과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인간다운 군인’과는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단 일반 병 문제만이 아니다. 군 간부들의 성추행이나 성폭행, 언어폭력 문제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무조건 복종과 줄세우기 등 뿌리깊은 우리의 후진국적 군사문화가 낳은 병폐들이다. 대기업 회장들의 갑질 논란도 거의 비슷하다. 직원들을 소중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부려야 한다는 ‘잘못된 기업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여전히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군대는 존속될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정세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마침 어제(15일)는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축일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라는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며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커졌다. 한반도의 평화도 분단극복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북한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 등 외세를 스스로 물리칠 만큼 국력이 월등하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다. 그래서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강력한 군사력은 첨단 무기체제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군인들의 정신 재무장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군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군사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경제력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침체된 세계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사장이 곧 사원이요, 사원이 곧 사장’이라는 기업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주종관계로 얽힌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사원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미래가 없다.

군대건 기업이건 ‘사람이 자산’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우리나라 미래가 밝지 않겠는가? 80대 촌노(村老)의 바람처럼 필자 자신부터 과연 제대로 인격을 갖췄는가,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대했는가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36년간 비참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 72년이 지났으나 우리 스스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케 한 광복절 72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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