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전라도 농업을 빛낸 선구자>

⑧ ‘꽃을 품은 무화과’ 영암 故 박부길씨

척박한 영암에 무화과 심어 부농 기틀 마련

농협조합장 취임 후 재배단지 20여㏊ 조성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고향의 산업·풍경 바꿔

전국 생산량 60%차지 아열대 기후 ‘최고’명성
 

전남 영암군이 무화과 주산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의 친형인 고(故) 박부길(1941~1973년) 초대 삼호농협 조합장의 역할이 컸다. /전남도 제공

무화과(無花果).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꽃이 피지 않는 과일이다. 하지만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무화과는 ‘꽃을 품은 과일’이라고도 불린다.

전남 영암지역은 전국 최고의 무화과 산지다. 전국 재배면적의 60%를 차지하는 영암의 무화과 수확이 7월 중순부터 시작해 11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영암군은 지난해 804농가(420㏊)에서 5천408톤의 무화과를 생산해 300여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영암에서는 도후인, 봉래시, 바나네 등 3개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2015년 무화과 특구로 지정돼 2020년까지 18개 사업, 162억원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매년 가을철이 되면 목포에서 진도나 해남 방향으로 접어들면 길가에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다이어트 특효’, ‘항산화 노화예방’ 등의 문구를 걸고 무화과를 파는 가게나 노점들이 줄을 선다.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이런 계절 풍경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도 드물지 않게 됐다.

이처럼 영암이 무화과 주산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의 친형인 고(故) 박부길(1941~1973년) 초대 삼호농협 조합장의 역할이 컸다. 그가 조합장 취임 후 1971년부터 농가보급운동을 펼쳐 무화과 재배단지 20여㏊를 조성한 것이 오늘날 ‘영암 무화과’의 명성을 쌓는 밑거름이 됐다. 한 사람의 열정이 고향의 산업과 풍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32세로 요절한 박부길씨의 청년시절 모습. /전남도 제공

■영암에 새 품목과 ‘풍경’ 선사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암지역은 한낱 보잘 것 없는 빈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박부길씨는 외국에서 새로 발견한 무화과 품종 ‘마쓰이도우핀’이 영암지역 환경에 적절하면서도 경제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암지역은 날씨가 따뜻하고 수분이 잘 빠지는 사양토질이 많아 무화과 재배 적지로 판단한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 땅에서 볼 수 있었던 무화과는 작고 당도가 낮은 데다 맛이 떫어 일반적인 과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1964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업에 투신해 1969년 전남새농민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삼호농협 초대조합장에 취임하고 새 품종 무화과를 심기 시작했다. 가지만 꺾어 꽂으면 금방 뿌리가 나는데다 병충해에도 강해 유리한 점이 많았다.

터키를 비롯한 지중해 지역이 원산인 아열대식물 무화과는 지중해 지역과 기후가 비슷한 삼호지역에서 잘 자랐다. 영산강(현재 영산호)과 영암호에 둘러싸인 이곳은 그 때까지만 해도 뚜렷한 특산물이 없었다.

노지(露地)에서 농약도 하지 않는 작물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당시에는 다른 지역에서 이를 따라 심어도 제대로 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새롭게 선보인 특별한 과일 무화과는 ‘부러움을 넘어 질시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잘 팔렸다.

영암지역이 오늘의 부농지대로 바뀐 데는 박부길씨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농협 관계자가 ‘고 농협조합장 박부길 추모비’를 설명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지역특산물 생산 앞장

하늘은 재주 있는 이를 먼저 부른다고 했던가? 젊은 나이에 그는 세상을 떴다. 32세였다. 그가 그렇게 정성을 들였던 무화과의 첫 수확을 앞둔 시점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장례는 삼호면민장으로 치러졌다. 그 해 부인 최금자씨는 전국 새농민대상(농협)을 받았다. 무화과 분야의 사실상 동료 농업인이었던 최씨는 남편의 몫까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듬해 삼호농협은 그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운다. 그의 유시(遺詩)가 비석에 새겨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걸음을 붙잡는다.

‘어느 산 비탈길에서 / 무거운 지게 짐에 눌려 쓰러진다 해도 / 이길이 조국과 농민과 영광에의 길이기에 / 나는 이 길을 택하노라’

영암 삼호읍에서는 600여 농가가 250여㏊ 면적에 무화과를 가꿔 한 해 4천여t을 수확한다. 매년 영암군은 삼호읍에 있는 전남도농업박물관과 부근 나불도유원지에서 무화과 수확철에 ‘무화과 축제’를 연다.

올해는 다음달 15일부터 사흘간 나불공원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 때 전국 생산량의 90%를 상회하던 호황을 다시 기대하는 노력이다. 월출산이 바라다 보이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 가을 축제는 꽤 인기가 있다. 농산물과 음식 판매 등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다.
 

전남 영암군은 전국 최고의 무화과 산지로, 전국 재배면적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전동평 영암군수가 최근 무화과 선별작업현장을 찾아 영암 무화과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영암군 제공

■재배 신기술 확보로 전남 특산물 자리매김

남해안 일대에서 무화과 재배가 늘어나 요즘은 전국 생산량의 60%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출범 당시의 노지재배는 이제 시설을 이용한 재배로 고도화되고 있는 추세다. 또 사람이 수확기에 적당하도록 나무의 키를 너무 크지 않게 하는 왜성(矮性)재배 기술과 상자양액재배 등 새로운 재배법이 개발돼 보급되면서 이 과일은 점차 우리 일상생활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꽃을 품은 무화과’가 영암 무화과 농가의 공동 브랜드 중 하나다.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의 무화과라는 이름이 이 과일의 특징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함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꽃은 우리가 ‘열매’라고 생각하는 무화과 안에 숨겨져 있다. 그 안에 촘촘히 박힌 가느다란 줄기가 꽃이다. 이 꽃은 외피 역할을 하는 두툼한 꽃이삭으로 덮여있다. 이 꽃 이삭과 꽃을 먹는 것이다.

영암 무화과는 일조량과 해양성기후 등 최적의 생육조건을 갖춰 타 지역에 비해 당도가 높고 과육이 부드러워 여성들이 선호한다. 또 피부미용과 변비, 고혈압, 부인병 예방에 효과가 크다. 이 외에도 단백질 분해효소인 피신이 다량 함유돼 있어 소화를 촉진시키고 항암효과도 있는 과일로 알려지고 있다.

‘천상의 과일’로 불리는 무화과는 이집트의 크레오파트라가 즐겨 먹고 로마 검투사의 스테미나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상류층들은 식사의 후식으로 반드시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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