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다산의 발자취를 찾아서

남도여행 문화재 탐방 강진 다산초당

'다산초당'(茶山草堂)'은 다산 정약용이 가장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곳으로 '강진 정약용 유적'(사적 제107호) 가운데 하나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주택으로, 초가집이 무너져 현대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다.

수원 화성을 설계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모함을 받아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됐다.

유배 초기에 주막의 방을 얻어 살았던 그는 1808년부터 1818년까지 초당에 거주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해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같은 대표적인 저서를 완성했다. 고단하고 곤궁한 환경 속에서 학문의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만덕산 자락에 있는 다산초당은 10분 남짓 산길을 걸어야 닿는다. 자그마한 암자처럼 산중에 숨어 있는데, 바람에 풀잎이 사박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질 정도로 적막하다. 

초당은 남향집으로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집 안에는 정약용의 초상화가 있다. 대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다.

집 주변에는 제자들이 머물던 숙소인 '서암'(西庵)과 다산이 집필 공간으로 삼았던 '동암'(東庵)이 복원돼 있다. 

이외에도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기 전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 차를 우릴 때 이용했다는 샘물인 약천(藥泉), 차를 마셨던 반석, 연못 안에 돌로 조성한 작은 산인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다산초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야생차와 동백림으로 유명한 사찰인 백련사(白蓮寺)가 자리한다. 다산은 백련사의 혜장 스님을 찾아 함께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와 함께 강진에서는 다산이 처음 기거했던 방인 사의재(四宜薺), 국보 제13호로 지정된 극락보전이 있는 무위사(無爲寺)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하룻밤 머물며 다닐 만한 문화재가 적지 않다.

촬영/ 김성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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