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중세 역사 도시를 걷다 -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발칸 9개국을 가다…<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⑤중세 역사 도시를 걷다 -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시가지 전체가 역사도시…‘민족 · 종교 분쟁의 화약고’ 실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시가지 광장에 우뚝 솟은 성 로브로 대성당
건축양식·조각 등 중세 시대의 냄새 물씬

자다르에서 출발해 트로기르(Trogir)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5월 31일 오후 4시였다. 트로기르는 구시가지 전체가 역사 도시이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버스 터미널 옆에 세워진 세계문화유산 표시

요트가 정박돼 있는 바닷가의 다리를 건너서 북문을 통과하니 구시가지이다. 구시가지는 골목이 좁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중앙광장으로 갔다. 광장 이름은 이바나 파블로 광장이다. 네모난 광장에는 성 로브레(Lovre, 영어로는 성 로렌스) 대성당, 시청, 시계탑, 노천카페와 식당 등이 있다.

인솔가이드는 트로기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다음 1시간의 자유 시간을 줬다.

먼저 성 로브레 대성당부터 보았다. 성 로브레(225∼258)는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재위 253∼260)의 박해로 순교한 기독교 성인이다.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257년, 258년 두 번에 걸쳐 기독교를 탄압했다. 그런데 그는 260년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페르시아 감옥에서 죽었다. 이 변고에 가장 기뻐한 이들은 기독교도였다. 그들은 ‘하느님은 박해자에게 반드시 벌을 내리는 법이다’라고 환호했다.

광장에 우뚝 솟은 성 로브로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재돼 있다. 그런데 대성당은 5천원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 갈 수 있다. 입장료까지 주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어 성당 입구만 보았다. 입구 양쪽에는 베네치아 공국을 상징하는 사자 위에 몸을 가리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조각이 있다. 트로기르 태생 조각가 라도반이 1240년에 만든 걸작이란다.

성 로브로 대성당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 아담과 이브상

이어서 골목을 거닐었다. 비좁은 골목은 중세 시대의 냄새가 물씬하다. 어떤 집은 대문에 침대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새겨진 조각이 인상적이다. 집안을 보았더니 화초가 잘 가꿔져 있고 빨래를 잔뜩 널어놓았다.

무작정 걸어 다니다가 길 잃을까 염려돼 광장 근처로 방향을 틀었더니 북문이 다시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40분이나 남았다. 그래서 인솔가이드가 추천한 송로버섯을 사려고 버스터미널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갔다. 그런데 버섯도 찾을 수 없고 종업원은 영어를 전혀 못한다.

다시 북문으로 갔다. 북문 위에 세워진 조각상을 살펴보았다. 한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 분이 바로 트로기르의 수호성인 이반 오르시니(Ivan Orsini)이다.

 

 

트로기르의 북문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건물의 조그마한 표시를 보았다. 여기에는 ‘갈라그닌 궁전(Garagnin Palace) 트로기르 박물관’이라고 적혀 있다. 베네치아의 귀족 갈라그린 집안의 궁전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윽고 광장에 도착했다. 대성당 건너편에는 복도식 건물이 하나 있다.

‘로지아(Loggia)’라 불리는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건물은 재판소로 사용됐는데 재판장이 사용하던 책상 뒤의 벽장식이 유명하단다. 자세히 보니 벽장식 중앙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책상 앞에는 ‘전통 달마티안 노래 15유로’라고 적힌 CD 판매대가 있다.

로지아 책상 뒤의 벽장식

중앙 벽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주교 페트루 베리슬리비추의 부조가 있다. 이는 ‘크로아티아의 미켈란젤로’ 이반 메슈트로비치(1883∼1962)의 작품이다.

주교 페트루 베리슬리비추의 부조

시 청사를 구경했다. 청사는 15세기에 지었는데 안마당과 계단이 고풍(古風)스럽다. 계단 위를 올라갔더니 사무실이다.

시청사 안

시 청사를 나와서 시계탑을 찬찬히 살펴봤다. 시계탑에는 조각이 두 개가 있다. 아래 부분에는 웃통을 벗은 채 두 손이 기둥에 묶여 있는 남자가 조각돼 있다.

시계탑에 있는 조각상

시계탑 내부로 들어갔다. 거기에도 두 손이 기둥에 묶여 있는 미모의 남자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이 바로 성 세바스찬이다. 그는 기독교도를 박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로마 황제(재위 284∼305)의 총애를 받은 근위장교였는데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몰래 기독교도들을 도운 탓에 발각돼 군중이 보는 앞에서 나무 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는 화살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 황제에게 기독교를 전하고자 했고,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한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했다. 유럽인들은 페스트를 ‘하늘에서 죄 많은 이를 벌하기 위해 쏘는 화살 때문에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화살에 맞아도 죽지 않았던 성 세바스찬을 기억해냈고, 세바스찬의 유물을 모시고 행진하고 부적을 몸에 붙였다. 그러자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성 세바스찬은 전염병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이 됐다.

시계탑 내부에 있는 성 세바스찬 조각상

그런데 성 세바스찬 조각상 옆 벽에 ‘1991~1995’라고 적혀있고 여러 명의 명단이 있고 크로아티아 국기가 세워져 있다. 그 옆을 보니 30명도 넘은 사진이 붙어 있다. 이것이 바로 1991~1995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전사자 명단 및 사진이다. 아마 트로기르 지역에서 전사자들 같다.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전사자 사진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공산주의 국가들은 동요했다.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 연방도 해체 위기를 겪었다. 1991년 5월에 크로아티아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공화국 전체를 장악하는 베오그라드의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12%에 달하는 세르비아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크로아티아를 공격했다. 사실상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정교회와 카톨릭 교회의 싸움이었다. 세르비아 민병대와 유고군은 자다르 등 달마티아 지역을 점령했고 10월에는 유고 해군이 두브로브니크의 세계문화유산을 650회나 포격했다.

발칸이 ‘민족 · 종교 분쟁의 화약고’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트로기르에서 그 흔적을 보니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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