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곳곳이 기독교에 대한 박해 흔적

발칸 9개국을 가다…<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⑥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도시 곳곳이 기독교에 대한 박해 흔적
황제의 아파트·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등 중세 역사의 현장
기독교도 3천~4천명 순교 후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공인
엄지발가락 만지면 소원 이뤄진다는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트로기르에서 출발해 스플리트(Split)에 도착한 시간은 5월 31일 오후 6시였다. 곧바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구경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45~313, 재위 284~305)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293년에 궁전 공사를 시작해 305년에 준공했다. 크로아티아 500 쿠나 지폐의 뒷면에 그려져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남북 215m, 동서 180m, 높이 20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동서남북에 문이 있으며, 그 이름도 금·은·청동·철문이다.

해안가에 인접한 남문(청동 문)으로 들어갔다. 지하 통로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다. 계단을 오르니 ‘황제의 아파트’가 나온다. 황제아파트는 벽체만 남아있다. 그런데 주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빨래가 널어져 있는 집도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의 아파트
황제의 아파트
황제의 아파트

황제 아파트 근처에 민족학 박물관이 있는데 문이 잠겨 있다. 조금 더 가니 객실이 7개밖에 없다는 특급호텔도 있다. 이윽고 앞뜰이 나온다. 뜰은 벽으로 둘러싸였는데 천장이 뚫려있다. 이곳에서 아카펠라 합창단이 노래를 부른다는 데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앞뜰의 공간

이윽고 열주광장(페리스틸 광장)으로 나왔다. 여기에는 16개의 대리석 열주가 세워져 있고 로마 건축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재된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이 있다. 성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순교한 스플리트의 수호성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리트 근교의 살로나(지금의 솔린)에서 하층민으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군인으로 출세해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이 됐다. 그런데 누메리아누스가 284년에 살해되자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3세기동안 20명의 황제가 바뀔 만큼 불안한 로마의 정세를 수습하고 통치권을 강화했다. 나라를 동서로 나누고 황제와 부제를 두는 ‘4두체제’를 확립한 그는 니코메디아(현재 터키의 이즈미르)를 수도로 하는 동부지역을 다스렸고, 동료 막시미아누스는 밀라노를 수도로 하는 서부지역을 다스려 로마의 안정을 꾀했다.

그런데 그의 유일한 위협세력은 다신교 사회 로마제국에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유일신교 기독교였다. 재위 19년째 접어든 303년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40년간의 평온 뒤에 닥친 이 박해는 309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시기에 성서들은 불태워졌고 성당은 파괴됐으며 개종하지 않은 3천~4천명의 기독교도가 처형당했다.

그러나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밀라노 칙령에는 이런 내용이 명시돼 있다.

“오늘부터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거기에 수반되는 종교행사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한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21년간 로마를 통치하고 305년에 로마황제 최초로 자진 은퇴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궁전에서 채소밭을 가꾸면서 여생을 보냈다는데 그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한다. 아내와 외동딸 발레리아가 에게 해 연안의 테살로니키 중앙광장에서 처형돼 주검이 그대로 바다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7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 자리에 성 도미니우스 성당을 지으면서 기독교도들은 기독교를 탄압한 황제의 초상화와 유품 등을 산산 조각냈고, 성당 안에 안치돼 있던 영묘도 미스터리이다. 무덤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열주광장

대성당 앞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집트 원정 때 가져왔다는 스핑크스가 있다. 원래 12마리의 스핑크스를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데 지금은 2마리만 남아 있다. 10마리는 기독교도에 의해 몽땅 머리가 잘렸단다.
 

도미니우스 대성당 입구에 있는 스핑크스

이곳을 지나 서문(철문)으로 향했다. 미로 같은 골목에는 카페·음식점·기념품점들이 즐비하다. 서문 가는 도중에 인솔가이드는 2014년 1월까지 방영된 8부작 ‘꽃보다 누나’ TV 출연자들이 머물렀던 숙소를 보여준다.

매우 비좁은 골목을 지나니 주피터 신전이 있다. 신전 앞에는 머리가 없는 스핑크스가 신전 문을 지키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본인이 주피터의 환생이라 믿어 이곳에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황제 사후에는 기독교인들이 세례당으로 바꿨다.
 

주피터 신전 앞 스핑크스

서문을 나오니 ‘나로드니 광장’이다. ‘시민광장’이라는 뜻의 광장에는 15세기에 지어진 구시청사가 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 현지 가이드는 연신 ‘꽃보다 누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장 앞면에 ‘꽃보다 누나’ 연예인이 머문 방이 있는데 숙소 주인이 말끔히 고쳤단다. 그리고 보니 방 하나가 단장돼 있다. 일행들은 이 방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었다.
 

나로드니 광장

이어서 좁은 골목을 걸어서 북문(황금 문)으로 나왔다. 이곳은 공간이 넓고 공원이 있다. 조금 걸어가니 엄청 큰 동상이 하나 보인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이다. 그레고리우스 닌은 10세기 경 크로아티아의 대주교였는데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모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투쟁해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그런데 동상의 엄지발가락이 반질반질하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단다. 이 동상 역시 ‘발칸의 로뎅’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1929년에 만들었다. 스플리트에는 이반 메슈트로비치 미술관이 있다.
 

그레고리우스 린 주교 동상

다시 북문에서 열주광장으로 왔다. 대성당 주위에 세워진 사자상과 스핑크스를 다시 보고나서 노천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제 1시간의 답사를 마치고 동문(은문)으로 나가 해변가에 있는 관광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외관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궁전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3권>에서 적었듯이 궁전이라기보다는 성채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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