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판사, 따뜻한 판사

<황선욱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최근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으나 소년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청소년들이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다.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으며, 정치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년법의 취지는 청소년의 일탈은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법적 지위를 악용하여 상상하기도 힘든 잔혹한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법이 포용해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자연스럽게 법학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 이러한 자부심은 어쩌면 법에 대한 최고 의식, 법 만능주의 등으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실제로 현대의 선진국 중에서 법치주의를 표방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 국가 내의 모든 행위는 기본적으로 물리력이 아닌 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실이 꼭 법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각종 탈법 행위 등으로 법을 악용하고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이념은 숭고한 것이지만, 현실에는 이와 같이 숭고한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법의 악용 가능성을 법의 한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법은 자연과학적 진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은 단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해석하고, 사람이 적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기술한 추상적이고 짧은 몇 문장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고자 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법을 서술하지 않는 이상, 법은 불완전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의 악용 가능성, 즉 법의 한계를 수용하는 순간 판사의 책무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기본권 보호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을 잊지 않으면서도 법을 악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자들의 기본권을 구제하고자 하는 따뜻함보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냉정함이 판사가 지향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판사가 실체적 진실조차 분별하지 못하여 처벌을 받아야 할 자에게 온정을 베푼다면 사회정의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판사일 텐데, 냉정함이 판사의 자질이라는 것에 모순을 느끼는 혹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하나의 필수적 관문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더욱 쉽게 말하자면, 다가올 달콤함에 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쓰디쓴 과정을 감내하는 것이다. 어느 것에도 편중되지 않는 균형 감각으로 차갑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기저에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자, 그가 바로 진정한 법관이다.

지난 2016년에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선수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할지라도, 바둑과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요하는 영역을 기계가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게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인공지능이 언제 그들의 직업을 앗아갈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 또한 이와 같은 인공지능의 위협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법학도로서 엉뚱한 의문 하나 가져본다. 인공지능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두고 어떠한 판결을 내릴까? 판사의 냉정한 균형 감각과 따뜻한 인간애까지 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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