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과 햄릿

사탄과 햄릿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이제 사탄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핀다. 커다란 동굴 한 가운데 검은 색 불꽃이 검은색 빛을 내며 타고 있고 주위는 온통 희미하게만 구별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그 곳에 쓰러져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자신이 하느님과의 싸움에서 완패했다는 것 뿐이다.

밀턴의 <실락원>은 이렇게 극적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래는 천사이었던 사탄, 그가 하느님에게 도전했다가 하느님에 의해 지옥으로 던져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제 자신이 하느님에 대적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께 복수를 할 방법을 찾는다. 하느님이 가장 아끼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낸 사탄은 하느님께 복수를 하기 위해 인간을 유혹해서 그들을 타락시켜 지상낙원에서 추방되도록 하는 것이 <실락원>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이 서사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사탄이라는 악마이다.

하느님에게 패한 후 지옥에 갇힌 후 그 곳에서 탈출하고, 뱀으로 변신해서 인간을 유혹하는 사탄의 목적은 단 한 가지, 하느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는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완성된다. 그 목적을 위해 사탄은 좀처럼 방황하지 않는다. 복수라는 분명하고 절박한 목적은 사탄의 행동을 언제나 일관성 있게 하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중요한 전략이 된다. 지옥문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괴물도, 낙원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아담과 이브의 행복한 모습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의 2회전에서 승리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탄의 반대편에 햄릿이 서있다. “사느냐 죽는냐, 그 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희곡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선한 인물이다. 자신의 애인과 어머니를 사랑하고 삼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착한 왕자이지만 그의 이런 성격을 뒤흔드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다음이다.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왕위와 엄마를 차지했다는 아버지 유령의 얘기를 들은 후부터 햄릿의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다. 삼촌을 무찌르고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로 생각하는 착한 아들 햄릿은 복수의 문제로 언제나 머리 속이 복잡하다.

하지만 햄릿은 사탄과 다르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회를 놓쳐서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다. 더 좋은 시간, 더 좋은 장소, 더 완벽한 기회를 추구했던 햄릿이 결국 얻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극이다. 햄릿이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다양한 옵션에 같은 무게를 두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햄릿은 신속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생각해보라, 삼촌이 홀로 고개 숙여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기도하고 있으니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지도 모르지. 그를 지옥에 보내는 것이 내 목적인데 그가 참회를 하고 천국에 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가 도달할 수 있는 결과는 뻔하다. 사탄과 햄릿이 얻은 것이 상반되는 것은 자신의 목적에 일관성이 있는가, 목적에 모순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에 상반된 대답을 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부를 보면 사탄보다는 햄릿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를 짓누르고 있는 북핵문제에 문재인 대통령은 좀처럼 일관되고 합리적인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 군사력에 균형을 맞추겠다고 하면서 전술핵배치는 배제하거나, 북한압박에 공조하겠다고 하면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두 개는 결코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것인지 아니면 전후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즉흥적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정부와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햄릿의 비극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도 또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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