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동포에게 조국을 돌려주자

‘고려인’ 동포에게 조국을 돌려주자
<허성태 조선대학교 외국어대학 교수>
 

1860년대 한반도에 대기근이 발생하고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심해지자 이를 견디다 못한 한인들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피신하여 토지를 개척하며 정착한다. 이것이 한인의 최초 러시아 이주 기록이다. 그 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10년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이에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무대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한인들이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대거 러시아 연해주 땅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렇게 연해주 일대에 정착하여 살던 ‘고려인’들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물설고 낯선 이역만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지 올해로 80년이 되었다. 이와 관련한 행사들이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서울 등 국내 ‘고려인’ 집거지를 중심으로 다채롭게 개최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려인’들을 위한, ‘고려인’들이 주체가 되어 치러지는 행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자치주를 형성하여 우리의 말과 전통 문화를 유지해 온 중국 ‘조선족’ 사회와 달리 모국과 역사적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모국인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후에도 해외동포로서의 법적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말 기근과 스탈린의 한인 말살정책 등 숱한 역사적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역사적 고향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은 독립투사들의 피가 흐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한민족의 일원임이 분명하지만 오늘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도 외국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전 세계에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들 중 6만 명 정도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국내 거주 ‘고려인’들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약 3천 명, 경기도 안산 뗏골마을에 약 1만5천 명이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인천, 천안, 경기도 광주와 화성 등에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거주 고려인들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고려인 특별법개정을 통한 법적지위의 확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의 ‘고려인’과 같은 재외동포의 법적지위에 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정부는 1990년대 3D산업분야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중남미 등에 거주하던 일계인 3세까지를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서 정한 재외동포로 인정하여 약 30만 명을 3년간의 정주자 체류자격으로 일본 본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계인 3세들이 일본에 들어와 정착한지 27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일계인 4세 이상에게도 체류자격을 인정하자는 여론이 쇄도하게 되었다. 이에 현 아베정권은 일계인 4세 이상에게 합법적인 일본 거주를 보장하는 ‘일계인 4세를 위한 워킹홀리데이제도’를 만들 것을 제안하여 일본어 능력을 키우면서 체류자격을 부여하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해 11월부터 일계인 4세들에게 3년간의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보장하여 일하면서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배우도록 유도하고, 이후 당사자의 뜻에 따라 영구 정주권을 부여하여 일본에 완전히 정착하게 하거나 원래 살던 중남미 국가로 돌아가서 일본에서 습득한 기술을 현지인들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재외동포법’도 국내 거주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외동포법시행령’에 재외동포의 범위가 3세까지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를 제외한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은 재외동포법이 정한 외국국적 소유의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하여 재외동포비자(F4)를 받을 수 없다.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에게는 방문취업비자(H2)만 발급될 뿐이다. 그나마 방문취업비자도 그 자격이 주어지는 만 25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하고 그 이전에 한국방문이 꼭 필요한 경우 방문동거비자나 유학비자를 받아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 국회의원은 고려인 귀환동포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미비하다고 지적하면서 ‘고려인 동포체류 요건 합리화, 고려인 4세 이상의 재외동포 지위인정, 한국어 교육과 의료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고려인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 고려인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고려인들이 재외동포로서 합법적으로 국내에 체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고려인 4세에게도 워킹홀리데이 체류자격을 부여하면 연령 제한 문제와 국내 산업현장의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한 ‘고려인’ 청년 인재 수용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유랑의 삶을 살다 가신 애국지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고려인사회 건설의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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