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하는 세월, 정말 지겹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하는 세월, 정말 지겹다
<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장>
 

시월이 코앞이다. 이제 곧 칠부 능선을 타고 단풍 전선이 남하하고, 은행잎이 노란 물을 머금으면 국향이 묵향 따라 천공에 바람 가듯 흐를 것이다. 더욱이 날씨 좋은 열흘간의 추석명절까지 끼어있으니, 올 시월은 참으로 포근한 상달이라 하겠다.

상달이란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 상월(上月)이라고도 하고 양월(良月)이라고도 한다. 상달은 시월상달의 준말이며, ‘시월’의 ‘시’는 십(10)에서 받침이 떨어져 나가 시월로 발음이 된 것이다.

시월이 좋은 달일 수 있는 것은 9월을 지나오고, 11월이 들기 전 끝나기 때문이다. 9월은 가을이라고는 해도 아직 여름의 입김이 남아 있고, 11월은 가을의 끝자락을 밟고 들어서 ‘시월막사리(시월 그믐께)’와 만나기 때문에 겨울에 가깝다.

하지만 시월은 그 중간에 서서 넉넉한 오곡백과를 사람들에게 진상한다. 그래 가을 중은 부지런히 돌아다닌다고 ‘가을 중 싸대듯 한다’는 말을 하지만, 시주(施主)도 어디 봄날 동냥 승(僧)에 비할까. 물건이 가득한 것을 가리켜 ‘가을 중 시주 같다’고 하는 말은 그래서 생긴 속담이다.

로마의 구력에서는 10월이 여덟 번째 달에 해당하는 달이다. 영어의 옥터버(October)는 라틴어 ‘옥토베르 멘시스(October Mensis)’에서 달을 뜻하는 멘시스를 떼어 내고 8번째라는 뜻의 옥토베르만 갖다 쓴 형태다. 당초 8번째에 자리한 달이 10번째의 달로 밀려난 것은 해외 정벌에 공을 세운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달 이름에 자기 이름을 끼어 넣었기 때문.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은 황제는 그의 양자 티베리우스다. 의회가 그의 이름을 따서 11월을 티베리우스로 고치자고 제안하자 ‘황제가 13명 이상이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거절했다. 그래 본시 9번째 달이던 노벰버(November)와 10번째 달인 디셈버(December)는 황제의 이름으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 2단계씩 후퇴해 11월과 12월이 되었다.

이처럼 풍요롭고 따뜻한 계절인 시월이 어느새 우리 앞에 우뚝 서있다. 하지만 이 찬란한 계절, 시월을 맞는 국민들의 심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나라 안팎으로 직면한 여러 가지 시련 때문이다. 트럼프는 부시행정부와 빌 크린턴 행정부처럼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은 뒤로한 채 북 핵 위기로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을 상대로 장사하려는 속셈이 역력하다.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아직도 임명하지 않고 있고, “한국의 북한과의 유화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을 비난한 뒤 한미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위협하고 있는 점, 이란 핵 협정 파기를 미끼로 사우디에 무기를 팔아먹은 행태와 똑같은 수법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한국에 수조원대의 무기 판매를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힌 점도 트럼프 장사 속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장사를 위해선 우방이든 혈맹이든 다 필요 없다는 식이어서 근심은 더욱 깊어진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지난 19일 취임 뒤 첫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불량국가’, ‘범죄자 집단’, ‘완전 파괴’, ‘타락한 정권’ 등 원색적인 말 폭탄을 퍼부어댐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뒤에 한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긴장 고조를 거부한다. 북한과 어떤 대화의 문도 닫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치받았을 것인가.

미국 안팎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정치인보다는 깡패 두목(mob boss)에 더 가깝게 들린 연설”이라며 자국 대통령을 영화 <언터처블> 속 알 카포네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에 비유했다. 영국 <가디언>도 “협박과 눈길을 끌려는 행위는 정책이 아니라 엄포(bluster)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도 보수야당이라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방귀만 뀌어도 대포소리를 듣는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창피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탄핵정국 이후 쪼그라든 존재감을 북 핵 위기를 이용해 되살려보려는 의도이겠지만 과연 이것이 보수정당의 실체인가 싶어 섬뜩하기 까지 하다.

전술핵을 구걸하러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한 것도 모자라 얼마 전 대구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5천만 핵인질·공영방송장악 저지 대구·경북 국민보고대회’에서는 망발이 쏟아졌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전술핵 배치 반대 뜻을 밝힌 것을 비난하며 “제일 좋은 사람은 김정은이다. 김정은 기쁨조는 문재인”이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그는 문 대통령뿐 아니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명수 대법원장, 전교조, 민주노총까지 ‘김정은 기쁨조’로 몰아붙였다. 이러다간 전술핵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이면 누구라도 김정은 기쁨조가 될 판이다.

막말 한국당인가. 어거지 생떼당인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마디로 불순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유엔이 국제사회에 요청한 대북 인도적 지원에 응하고 한반도와 주변국을 핵 도미노로 몰아넣을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하는 걸 무조건 ‘북한이 좋아할 것’이라 딱지 붙이는 것 자체가 불순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에 동조하는 여타 야당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정을 운영하는데 있어 야당으로서 정권의 능력과 도덕성 등 잘못은 지적하고 준엄하게 꾸짖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통사람들,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며 김정은 기쁨조라고 공공연하게 막말을 퍼붓는 행태. 어찌 ‘비참하고 절망적이다’는 뜻의 ‘참담하다’는 표현이 과하다 할 것인가.

시월은 여름 옷을 벗는 계절. 우리 모두는 이제 억새밭에 머리를 빗는 맑은 햇살 속으로 달려가, 지친 영혼을 달래보고 싶다. 하지만 올 시월에도 어려울 것 같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세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할 것인가. 이제 정말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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