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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 미디어아티스트의 남도일보 '목요마당'태양은 꽃을 물들이고 예술은 삶을 물들인다

태양은 꽃을 물들이고 예술은 삶을 물들인다

<이이남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
 

영국의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은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하지만 백남준은 키플링의 예언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보여준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인공위성으로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여 만든 생방송 텔레비전 쇼였다. 양쪽의 진행자가 건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쌍방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바로 백남준은 위성이 가져온 새로운 가능성을 예술에 적용하는데 그의 영감을 작동한 것이다. 당시로선 센세이션한 일이었고 과학적 성과가 예술로 승화한 순간이며 그것은 또 다시 요즘의 스마트폰의 시효라는 입장도 있으니 그 예술이 다시 과학으로 변한 것이다.

쓰임이 있어서 예술이 위대하다는 말은 아니다.

백남준이 가진 제3의 눈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창조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달을 보면서 TV를 떠 올리는가 하면(달은 가장 오래 된 TV) 텔레비전이라는 가장 흔한 매체를 이용해서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자연을 담아내었다. 우리는 이것들을 두고 미디어라고 하지 않고 미디어아트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만이 가진 새로운 시선, 바로 제 3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표현할 수 있음이 예술의 위대함 그 두 번째 이유다.

나 역시 미디어 아트를 하는 입장에서 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익숙하고도 낯선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 속에 아름다움과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신-모나리자’다.

‘모나리자’의 배경 위로 비행기가 출현하고 낙하산이 내려오더니 폭탄이 투하된다. 바로 ‘미소 뒤에 감춰진 강대국의 위선’을 풍자했다.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는 마리아의 품에 있던 예수를 공중 부양시켰다.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이 작품은 ‘수백 년간 붙어 있었던 예수와 성모를 떼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역발상에서 출발했다. 또 다른 이유로 지루한 현대미술작품에 반향을 던져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작품 앞에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렇게 표현된 나의 작품들을 사람들은 많이 사랑해 주었다. 유럽 어느 성당에서 열린 피에타 전시를 본 한 관객은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내 작품을 그의 가슴으로 받아 준 것이다. 그렇게 받은 피드백은 나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와 ‘불끈’ 다시 작업할 힘을 얻는다. 바로 예술의 세 번째 위대함은 바로 이것이리라.

‘태양이 꽃을 물들이듯 예술은 인생을 물들인다.’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러버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바로 예술 작품이 가진 감동은 널리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는 뜻이라 여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오늘 이 나라에서 예술가로 살고 있는 일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작으나마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더욱 고마운 일이다. 욕심을 더 부리자면 나의 작품이 누군가의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다면, 내가 이 세상 살아가는 이유로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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