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⑭나주 권상준씨>

⑭‘추황배’ 나주 권상준 전국 우리배 동호회장

‘추황배’불모지서 나주배 대표 품종으로 키워낸 ‘뚝심’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배농사 기술 축적·보급 앞장
전국 브랜드화·판로 개척…‘추황배 명성찾기’큰 성과
 

전남 나주 권상준 전국 우리배 동호회장은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배농사 기술을 축적·보급해 나주배 대표 품종인 ‘추황배’를 만들었다. /전남도 제공

국내 대표적 배 주산지인 전남 나주에서 ‘추황배’는 일명 ‘찌질이 배’로 홀대를 받아왔다.

추황배는 지난 1985년 농촌진흥청 배연구소에서 육성한 어엿한 우리나라 품종이지만 과실 크기가 작고 껍질에 검은 반점이 많아 소비자에게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고비를 넘겨온 전남 농업인의 노력으로 추황배는 나주배 대표 품종으로 우뚝 섰다. 연고도 없이 직장 때문에 왔다가 나주배의 매력에 빠져 나주에 터를 잡은 권상준(55) 전국 우리배 동호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 배는 고사하고 농사 문외한이던 그가 나주배의 대표농부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배농사 기술을 축적·보급하고 연구한 덕분이다.

권 회장은 못생겼지만 새콤달콤한 추황배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재배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논스톱 시스템을 만드느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그것이 오늘의 ‘나주 추황배’ 명성에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권상준 회장은 못생겼지만 새콤달콤한 추황배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재배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논스톱 시스템을 만드느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사진은 권 회장의 현장 강연 모습. /전남도 제공

■못생긴 추황배, 명품이 되기까지=“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일이 평생의 업이 됐다”며 웃는 배 사랑꾼 권상준 회장. 배 농사를 몰랐던 권 회장은 본격적인 배농사에 앞서 1990년부터 7년간 전국의 배 주산단지를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갖지 않은 재배기술이나 품종 등을 눈여겨 보았다. 이미 배 재배에 대한 선진지인 나주에서 뒤늦게 시작한 농부인지라 뒤쳐지는 모습이 싫었던 그였기에 철저한 준비를 했고, 농사를 시작하자마자 이를 실천했다.

추황배의 매력은 무엇보다 맛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당도가 무려 13~14°Bx(브릭스)로 거의 멜론 수준이고 당과 산의 절묘한 조화로 말 그대로 새콤달콤한 명품배다. 또 추황배는 신고배의 집중 출하시기를 지난 10월 중·하순부터 수확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저장력도 뛰어난 품종이다. 그럼에도 신고배 수분용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권 회장은 배 농사 시작과 함께 추황배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제대로 된 재배와 수확이 이뤄지면 신고배의 품질을 높일 뿐 아니라 수입산 화분(꽃가루)의 의존도를 줄이는 일석이조가 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러나 추황배가 나주배 대표 품종으로 자리잡기까지, 전국적 브랜드가 되고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기엔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권 회장은 “추황배의 가능성이 생산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산 넘어 산이었다”고 말했다.

추황배 브랜드화를 위해 그는 2004년 대학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로 작심했다. 추황배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소비자에게 단점으로 비춰지는 ‘과피흑변’이라는 외관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방지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과피흑변은 기능성 물질인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 과피가 검게 변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표면의 얼룩무늬를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으로 인식해 구매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었다. 몇 년 간의 관찰과 공부 끝에 의외로 간단한 데서 답을 찾았다.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용봉지를 씌워 재배하자 과피흑변이 사라진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권 회장은 “이 기술로 소비자가 기피하는 주 원인이었던 과피흑변 현상을 95% 이상 해결했다”고 말했다.
 

권상준(외쪽 세 번째)이 최근 울산에서 열린 추황배 품평회에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전남도 제공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전국 브랜드화=권 회장은 2009년부터 자신의 개인 브랜드인 ‘새콤달콤 나주 추황배’ 및 재배기술 노하우 등을 다른 농가들과 공유하면서 나주 추황배 브랜드화에 전념했다. 나주 추황배 브랜드화를 혼자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의 지치지 않는 열정 때문일까. 그가 회장을 맡고 있던 나주배 연구회와 나주시 농협공동사업법인(APC)과 함께 추황배 생산 및 공동선별선출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판로 문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의 재배 기술 지도와 나주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농협의 유통망 연결까지 더해지면서 2009년 19농가, 30여t이던 추황배 유통사업은 지난해 150농가가 참여해 600t을 생산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참여 농가 수는 8배 늘고 생산량은 20배로 늘어난 것이다. 추황배의 성공은 나주배의 명성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농가별로 소량 생산·판매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농산물산지유통센터라는 전문 유통조직을 통해 출하체계를 일원화 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 결과 대만 등 해외 수출이 줄을 잇고 있으며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와도 출하계약을 맺는 등 판로 확보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나주 추황배를 비롯한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우리배 품종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주 추황배는 기존 품종보다 과즙이 많고 당도가 월등히 높은 덕에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나주배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나주시 제공

■무에서 유, 짜릿한 성취감=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성취감이 있다. 권 회장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씩 하나씩 하다보면 하나, 둘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다”며 “그 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제2, 제3의 추황배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포다. 그는 “농천진흥청 품종 가운데 우수한 품종들이 많다”며 “요즘 소비자는 눈이 아닌 맛으로 찾는 만큼 소포장을 농착시킨다든지, 추황배처럼 생산부터 유통까지 구조망을 짜 소비자들이 먹고 싶은 배를 쉽게 찾도록 해주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권 회장이 펴낸 ‘국내육성 배 품종의 재배관리 및 유통사례’는 전국 배 재배 농업인에게 교과서와도 같은 모범답안으로 꼽히고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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