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17. 해남 최옥림씨>

17. ‘진양주’ 해남 최옥림씨

200여년 전통 이어온 ‘궁중 양조술’ 기능보유자

전통주 분야 최초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 지정

국제행사 만찬주로 호평…세계시장도 힘차게 노크
 

전남 해남군 진양주의 기능보유자 최옥림(78)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0여년에 걸쳐 내려오는 전통을 보존·계승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전남도 제공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이라고 말할 만큼 농업을 중시하며, 절기를 24개로 나눠 그 계절과 시기에 맞는 음식과 술을 집에서 빚어 마셨다.

집집마다 수대에 걸쳐 내려오는 양조 비법이 있었으며, 술을 파는 주막도 주인장의 양조법에 따라 맛이 달랐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는 다채로운 맛과 향을 지닌 술이 넘쳐났다. 하지만 우리 전통주는 일제침탈과 광복 이후의 엄격한 주세법, 한국전쟁 이후 밀주(密酒)단속과 양곡관리법 등을 거치며 설자리를 잃었다.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나마 1995년부터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됐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이 영세하고 전문 양조기술과 영업력 부재로 찬란했던 전통 가양주 문화가 복원되기에는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 전남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서 ‘궁중 양조술’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진양주가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진양주의 기능보유자 최옥림(78)씨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0여년에 걸쳐 내려오는 전통을 보존·계승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전남 해남군에 위치한 진양주 생산공장에서는 발효설비, 저장탱크, 자동입병장치, 살균여과기 등 현대화 시설을 갖춰 한 달에 500ml 8천병을 생산할 수 있다. /전남도 제공

■“한산소곡주도 문화재라는데 우리라고 왜 못해?”=최 씨는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 시집와서 시어머니로부터 시집에 전해 내려오는 술 빚는 법을 배웠다.

일설에는 200여년 전 조선 현종 때 어주 빚던 궁녀가 세상에 나온 뒤, 영암 어떤 벼슬아치의 소실로 들어갔는데 그의 손녀에게 술 담그는 비법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그 손녀가 덕정리로 출가해 진양주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맛은 임금님 술로 손색없다고 평가된다. 전승과 복원이 잘된 것이겠다.

5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난 최씨는 가난과 한국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학업도 포기하고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다. 23세에 중매로 얼굴도 모르는 신랑에게 시집왔다. 그 집에서는 윗대부터 제사나 명절 때 쓸 술을 만들었다. ‘밀주 단속’ 시대여서 숨어서 조금씩 만들었는데 그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나중에 한산소곡주 얘기가 신문에 난 것을 본 시아버지가 문화재 등록을 하자고 했다. 좋은 찹쌀과 누룩을 써서 더 맛있다는 주변의 평가에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도 20여년 시아버지를 모시며 이렇게 술에 관해 배우고 의견을 교환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독보적인 전통술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해남 진양주는 찹쌀과 누룩을 재료로 20일간 정성스레 발효시켜 맛과 향이 달콤하면서 부드러우며 뒷맛이 깔끔해 저도수를 선호하는 젊은 층에게 잘 어울리는 술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전통주의 원형에 가까운 술=홍주가 30~40도의 독한 술인 것과 대조적으로 진양주는 16도 안팎의 낮은 도수의 맑은 술이다. 익은 술에 용수를 박아 윗부분을 떠낸 것을 정제(精製)한 것으로 ‘맑은 술’이란 뜻의 청주(淸酒)라고 한다. 남은 텁텁한 술은 탁주(濁酒)가 된다. 흔히 ‘정종’이라 하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이 맑은 술에 그럴싸한 이름자 바를 정(正)과 마루 종(宗)을 붙인 것이다. 일본에서 청주의 상표이기도 하고, 주점 이름이기도 한 것이 우리에세 술 이름 또는 술의 종류의 하나인 것처럼 전해졌다. 이 이름은 쓰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본격적으로 진양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양주를 만드는 과정은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다. 찹쌀 죽을 쑤어 누룩과 혼합한 후 3일이나 4일 발효시킨다. 원하는 양 만큼의 고두밥을 지어 발효된 찹쌀 죽에 물을 부은 다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정제한다. 여기에 쓰는 물도 중요하다.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감싸는 흑석산은 월출산의 끝 줄기에 해당하는데, 바위의 색깔이 월출산과 같은 자줏빛이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이라야 진양주의 진정한 풍미를 낼 수 있다. 200년 전 술을 빚을 때부터 사용하던 마을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200m 깊이의 암반을 뚫어 거기에서 난 물을 쓴다.

진양주의 맛은 꿀을 섞은 듯 달콤하고 부드럽다.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노란빛을 띠어 일반적인 청주와 확연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코끝에 닿는 향이 은은하고, 입안에 머금으면 청주 특유의 시큼한 맛 대신 달콤함이 전해진다. 목으로 넘기는 느낌도 부드럽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원형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진양주, 전통주 시장 제패 나선다=최씨는 1994년에 전남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됐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만에 인정받았다. 2009년에 농수산부 전통주 품평회에서 약주(청주) 부문 금상과 ‘베스트5’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전남도의 ‘이달의 남도 전통술’에 뽑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도의 홍주와 함께 해남의 진양주를 그런 명주(名酒)로 세워보려는 노력이 전남도와 지역민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충분한 소질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둘 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인정받는다. 애호가들도 많다. 차츰 국제적으로도 평가와 명성을 얻으리라고 본다.

정부, 전남도, 해남군과 힘을 합쳐 진양주 제조시설도 현대화한다. 발효설비, 저장탱크, 자동입병장치, 살균여과기 등을 갖춘 238㎡ 규모의 새 공장에서는 한 달에 500ml 8천병을 생산할 수 있다. 그 전의 10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진양주 판매 촉진을 위해 지역 주요 관광지 방문객을 대상으로 홍보를 강화하고, 생산 체험 등 마케팅 전략도 수립,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상회의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식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돼 세계인의 호평을 받은 만큼 외국 수출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한편 ‘해남 진양주’는 인터넷(www.jinyangju.com), 전화(061-532-5745)로 구입할 수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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