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以夷制夷(이이제이)에 포박당한 한반도

중국의 以夷制夷(이이제이)에 포박당한 한반도

<최혁 남도일보 주필>
 

이이제이(以夷制夷)는 중국의 전통적 외교 전략이다. 이이제이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뜻이다. 이이제이는 중국 은주(殷周)시대에 형성된 화이관(華夷觀)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이관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中華)로 보고 중국 이외의 민족은 모두 이족(夷族)이라 간주한 세계관이다. 중국은 영토가 넓었기에 상대할 나라가 많았다. 이 나라들을 모두 군사적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간질과 부추김을 통해 오랑캐(이족)들이 서로 대립하게 만들어 중국에 유리하게 끔 상황을 만들어갔다. 중국은 조공(朝貢)제도를 통해 주변의 오랑캐들을 구슬렸다. 또 한편으로는 ‘자기편으로 만든 오랑캐’를 부추겨 ‘골치 아픈 오랑캐’들을 제거했다. 이이제이는 힘을 쓰지 않고 골칫거리를 제거하는 ‘성중국지력’(省中國之力:중국의 힘을 아낀다)의 대표적 전략이었다.

중국은 귀순한 외족(外族)을 중용해 그 외족으로 하여금 자신이 등을 돌린 그 나라와 싸우도록 했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흉노와 돌궐을 이 방법을 통해 약화시켰고, 결국은 무너뜨렸다. 우리의 조상인 동이(東夷)도 마찬가지였다. 당(唐)은 신라의 왕족 김인문에 군사요직(神丘道行軍副大憁管)을 주어 백제를 멸망시켰다. 고구려 멸망도 같은 경우다. 당에 망명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淵男生)에게 벼슬을 주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세웠다.

100년 이상 계속된 몽골(元)의 고려 지배 역시 이이제이였다. 몽골은 고려조정의 친원파(親元派)를 키워 반원파(反元派)를 제거해갔다. 그리고 몽골에 귀화한 고려인의 자식들을 장군으로 삼아 고려로 보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몽골군 장수였던 홍다구(洪茶丘)다. 홍다구는 아버지가 고려인이었다. 그는 몽골 군사들을 이끌고 몽골에 맞선 삼별초를 섬멸했다. 원은 귀화한 고려인을 통해 고려의 반원세력을 깡그리 제거했다.

고려를 삼킨 몽골군은 고려군을 이용해 일본정복에 나서기도 했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당시에는 고려군을 앞장세워 싸우게 하고 몽골군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고려는 몽골의 병참기지로 전락했다. 고려백성들은 전선을 만들고, 식량을 대느라 등골이 휠 정도였다. 전쟁 물자를 대느라 고려는 약해졌고, 일본 역시 여몽연합군을 막아내느라 죽을 맛이었다. 몽골의 일본원정은 사실상 두 오랑캐, 즉 고려와 일본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근현대사에서도 중국의 이이제이 외교 전략은 유지됐다. 냉전시기와 6·25전쟁에서는 소련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토록 했다. 지금은 북한을 이용해 미국을 농락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북한이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인 미국과 ‘맞짱을 뜰 수 있을 만큼’ 키웠다. 중국에게 북한은 ‘다용도 동이’(多用途 東夷)다. 결국에는 북한의 힘(핵위협)을 빌려 전통적 우방인 한국과 미국의 사이까지 벌려놓았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모호함, 그 자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 북한과 중국의 군사동맹에 맞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말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는 ‘3NO’ 원칙을 내세우며 ‘굳건했던 한미동맹’에서 한발을 빼는 모습이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 세 가지 원칙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을 이용해 미국의 맹방이었던 한국을 ‘좌 클릭’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중국에 ‘3NO’ 원칙을 밝힌 것과 관련해 “정부가 누누이 밝혀왔던 입장으로 우리 국익과 안보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당황스럽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처해왔는데, 갑작스럽게 중국 편에 선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의 역사는 돌고 또 돌아 원점에 선 모양새다. 한반도가 숙명처럼 떠안고 있는 지정학적 환경은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이다. 당혹감과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강대국 미국을, 중국을 견제하는 오랑캐로 활용할 수 없었을까? 트럼프가 한국에 도착하기 불과 며칠 전, 그의 속을 그렇게 긁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중국의 압력에 밀려 군사주권을 포기하고 꼭 그렇게 굴복해야만 했을까? 중국의 이이제이에 또 무참히 농락당한 것 같아 참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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