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기획
발칸 9개국을 가다…⑧ 보스니아 모스타르 다리“모스타르 ‘평화의 종탑’서 보스니아와 한반도 평화 기원”

발칸 9개국을 가다…<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발칸 다시
 

 

 


⑧ 보스니아 모스타르 다리
“모스타르 ‘평화의 종탑’서 보스니아와 한반도 평화 기원”
오스만제국이 1566년에 세워…1993년 내전 중 파괴된 후 2004년 복원
정식 명칭 ‘스타리 모스트’…200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차 대전 도화선 ‘라틴 다리’·노벨상 소설 제목 ‘드리나강 다리’도 발길

9 20170601_151927
다리 입구 파수 탑 2층에서 본 모스타르 다리. 이슬람 지역이 잘 보인다.

보스니아에는 3개의 다리가 있다. 라틴 다리, 드리나 강의 다리, 모스타르 다리가 그것이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라틴 다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었던 곳이다. 1908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은 보스니아를 강제 병합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는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군대를 격려한 후에 라틴 다리를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체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보스니아 소도시 비셰그라드에 있는 드리나 강의 다리는 오스만 제국이 1516년에 세운 다리인데, 196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보 안드리치(1892∼1975)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400여 년 동안 다리에서 일어난 24개의 이야기이다. 안드리치는 이슬람, 가톨릭, 세르비아 정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의 갈등과 공존, 그리고 발칸을 지배했던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묘사했다.

세 번째 다리는 모스타르 다리이다. 1566년에 오스만 제국이 세운 이 다리는 카톨릭과 이슬람교가 공존한 다리였으나, 1993년 보스니아 내전 중에 파괴되었다. 2004년에 복원된 이 다리에는 ‘1993년을 잊지 말자(Don’t forget 1993)’라는 조그마한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1 20170601_143140
폐허가 된 모스타르 시내의 건물

▶모스타르 다리를 보다.

성모발현지 메주고리에를 출발하여 모스타르에 도착한 시간은 6월 1일 오후 2시20분이었다. 첨탑이 뾰쪽한 성당 앞에 도착하여 모스타르 다리까지 걸었다. 모스타르(Mostar)라는 지명은 ‘다리의 파수꾼’이라는 뜻의 Mostari에서 온 것이다. 도중에 흉물스런 건물 하나를 보았다.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다.

다리에 가까이 오자 길 바닥이 조각돌로 깔려 있다. 터키 풍의 기념품 가게, 다리 그림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2 20170601_143507
다리 그림을 파는 가게

이윽고 모스타르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의 정식 명칭은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영어는 Old Bridge, 한글은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를 건넜다. 그랬더니 또 다른 세상이다. 무슬림들이 사는 냄새가 가득하다. 터키 국기도 게양돼 있다.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등이 늘어져 있는 길을 걸어서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 도착했다. 단체 이동은 이제 끝났다. 40분간 자유시간이다.

3 20170601_144909
이슬람 사원 모스크

이슬람 지역의 기념품 가게 근처에서 ‘Don’t Forget’라고 새겨진 돌 하나를 보았다. 다리를 배경으로 인증 샷도 찍었다.

4 20170601_144650
‘Don’t Forget’ 표시 석

그런데 기념품 가게의 지붕이 특이하다. 강원도 탄광촌의 너와집 지붕과 비슷하게 생겼다.

6 20170601_144457
돌 지붕으로 된 이슬람지역의 기념품 가게

이윽고 ‘오래된 다리 박물관(Old Bridge Museum)을 구경했다. 보스니아 내전 시 붕괴된 다리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1인당 5유로나 주고 박물관을 들어갔다.

그런데 박물관은 오스만 제국 당시의 다리와 성, 그리고 도시의 형성에 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나마 아래층에 전시된 유네스코의 다리 복원 과정은 위안이었다.

7박물관에서 본 모스타르 다리 20170601_150308
‘오래된 다리 박물관’에서 바라본 모스타르 다리. 멀리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박물관을 나와서 ‘올드브리지와 타워’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1566년에 오스만 제국은 폭 5m, 길이 30m, 높이 24m의 아치형 이슬람식 다리로 만들었는데, 1993년 11월 보스니아 내전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1992년에 보스니아 내전이 터지자 모스타르도 평화가 깨졌다. 세르비아 인과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무슬림이 뒤엉키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충돌했다. 세르비아 군이 모스타르를 진격해오자 카톨릭과 이슬람교도들은 뭉쳐서 세르비아 군을 막아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욕심이 문제였다. 세르비아 군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크로아티아인이 무슬림을 공격했다. 뒤통수를 친 것이다. 무슬림은 크로아티아군에게 인종청소를 당했고 3천명이나 죽었다. 1993년 11월9일에 크로아티아 군대는 다리를 폭파하여 무슬림들을 고립시켰다.

1997년 9월에 나토 평화 유지군은 네레트바 강에서 다리의 조각들을 찾아냈다. 이후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재건축이 시작돼 다리는 2004년 7월에 완공됐다.

2004년 7월 23일에 다리 준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세계 10개국 정상과 영국의 찰스 황태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하여 보스니아의 평화를 기원했다.

한편 ‘스타리 모스트(Old Bridge)’는 2005년 7월 17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8 20170601_152739
Don’t forget 1993 표시 석

▶‘Don’t forget 1993’ 표시석

그런데 자유시간이 다 끝나가는 데도 ‘Don’t forget 1993’ 표시석(標示石)을 찾지 못했다. 별수 없이 다리 입구의 미팅 장소로 갔다. 재수가 좋았을까. 다리 입구 기념품 가게 앞에 ‘Don’t forget 1993’ 표시석이 있었다.

파수 탑 2층을 바라보니 ‘전쟁 사진 전시관’이라는 표시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유료이다. 더구나 만날 시간이 2분밖에 안 남았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서 기념엽서들을 보았다. 1903년부터 2010년까지 모스타르 다리의 엽서들이다. 1993년에 파괴된 다리 엽서도 있다. 엽서를 여러 장 샀다. 3장에 1유로인데, 많이 사니 덤으로 몇 장 더 준다.

10 20170601_152552
모스타르 다리 엽서들

▶평화를 기원하다.

이제 관광버스가 있는 모스타르 성당으로 간다. 가는 길에 모스타르 국제학교를 졸업한 북한 김정은의 장손 김한솔을 생각한다. 그는 부친 김정남이 피살돼 은신 중이다.

성당 앞에서 107m의 ‘모스타르 평화의 종탑’ 표시를 보았다. 보스니아에 평화가 있기를. 한반도 평화도 함께 하길…

12 20170601_153650
모스타르 성당

 

13 20170601_153919
‘모스타르 평화의 종탑’ 표시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