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흙의 노래

2017 흙의 노래

<김주완 前 광주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영광 가는 길에 빛그린 국가산단을 만났다. 친환경자동차 부품 클러스터로 조성 중인 곳이다. 잠시 차를 멈추고 붉은 흙을 마주했다. 123만평의 거대한 땅에 겨울바람이 분다. 흙먼지조차 날려 다분히 스산하다. 천지를 채우며 속살을 드러내는 대지. 일순 땅의 붉은 기운이 나를 엄습한다. 설명키 어려운 전운마저 감돈다. 옷깃을 여미는 것이 바람 탓만은 아니다. 감동이다. 이것이 흙의 힘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산문 한편을 떠 올린다.

소설가 김훈(金薰)의 ‘흙의 노래’. 그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남도의 붉은 흙에서 생명력을 보았다. “흙의 노래를 들어라.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 밭에 나가보면…(중략)” 가랑이 논이나 밭에서 그는 봄의 기운을 보았다. 정돈되어 있지 않지만 그 자체가 희망이었다. 광산구 삼거동 땅이 그랬다. 맨살을 드러냈다는 것은 흰 백지와 다름없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전쟁터마저 떠 올린다. 그만큼 엄중하다. 척박한 광주였기에 그렇다. 내려 오는 예산만 저울질했던 도시다. 자체적으로 굵직한 것을 벌인 적이 거의 없었다. 빛그린 산단은 광주가 스스로 이룩해 조성 중인 땅이다. 붉은 흙에서 희망을 읽는다. 내년에 1천291억원을 투입한다. 19개 기업 지원사업도 펼쳐진다. 42종 공용장비와 미래형자동차 전장부품산업 육성 기획사업도 추진된다. 이제 친환경자동차는 광주가 선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카가 될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의 눈물을 기억한다. 광주시장과 공무원들의 노고가 컸다.

김훈은 흙의 노래에 묘한 풍경을 삽입했다. “늙은 부부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지만,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 돌아갈 때도 남편이 앞서고 아내는 몇 걸음 떨어져서 뒤 따른다” 왜 흙을 일구는 것의 재미를 서로 공유하지 못할까? 그는 의아해 한다. 그리고 단절을 경계한다. 빛그린산단이나 도첨산단의 진행과정을 보면 그런 우려도 없지 않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니 더욱 그렇다. 고상한 듯 보이지만 뒷맛은 고약한 언어들이 난무한다. 일구는 소리에 잡음이 섞이지 않도록 시민 동력이 더해지면 좋겠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시·도의 상생이 지금 버겁다. 한전공대가 새로운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조성 중인 남구의 도시첨단 산단과 나주 에너지밸리, 한전 등을 엮는 위치선정이 중요하다. 광주와 전남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경계지역이면 어떨까? 공동혁신도시의 의미를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작지에서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에 땅이 녹아서 부푸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행복하다. 이 행복 속에서 과학과 몽상은 합쳐진다” 그의 글은 이제 융합을 얘기한다. 녹은 물이 새벽 서릿발로 일어서면서 땅의 틈새를 벌인다. 헐거워진 흙의 틈새로 새싹들이 뻗어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자연(自然)은 사물들의 거대한 유기적 결합체이다. 산업도 다르지 않다. 작가가 말한 과학과 몽상은 기술과 창의력에 다름 아니다. 이것들이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 광주의 경우 몽상과 과학, 과거와 미래, 가치와 실존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생물 도시다. 광주정신과 5·18의 가치가 문화와 산업으로 연결되는 중이다. 친환경차와 에너지, 문화라는 삼두마차는 융합의 길을 달릴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그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여러 개의 기술들을 모아 엮는 것이 미래 산업의 본질이다. 빛그린 산단이 4차산업의 각축장이 되면 좋겠다. 시스템이 결합된다며 날개를 달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그렇다. 꿈을 꾸자. 몽상의 단초는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함께 꾸는 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 일자리다. 기업이 만든다. 모든 친환경차 사업의 초점이 기업을 향해야 한다.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더 큰 미래 비전은 공유돼야 한다. 나는 김훈의 흙의 노래가 희망 전달에 앞서 비전의 ‘공유’라고 본다. 붉은 흙과 거기에서 뻗어 나온 힘의 위대함은 ‘함께 간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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