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로와 사관 김일손(2)

탁영로와 사관 김일손(2)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498년 7월12일에 연산군은 김일손을 직접 국문하면서 “전번에 상소하여 소릉(昭陵)을 복구하자고 청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라고 물었다.

소릉은 문종의 비(妃)이자 단종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1418∼1441)의 능호(陵號)이다. 1457년(세조 3년) 6월21일에 세조는 상왕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영월로 유배시켰다. 6월26일에는 형수인 현덕왕후를 폐서인시키고 소릉을 파헤쳐 관곽을 해변 모래사장에 버렸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어느 날 밤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분노하여,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하였다. 세조가 놀라 일어나니, 갑자기 세자가 죽었다는 기별이 왔다. 이 때문에 소릉이 파헤쳐졌다.

소릉 복위에 관하여는 1478년(성종 9년)에 생육신 남효온이 처음 제기했다. 이어서 1491년과 1495년 5월에 김일손이 소릉 복위를 주청했고, 1496년(연산군 2년) 1월에 헌납, 김일손은 대사간 김극뉵, 사간 이의무 등과 함께 소릉복위를 연명으로 주청했다.

한편 연산군은 윤필상과 유자광 등에게 김일손을 국문하게 했다. 유자광은 사초(史草)를 가지고 축조 심문하였다. 김일손이 말하기를, “사초에 ‘황보(皇甫)·김(金)이 죽었다’고 기록한 것은 신의 생각에 ‘절개로써 죽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였다.

수양대군은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과 김종서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으나, 사관 김일손은 이들을 절의를 지킨 인물로 평가한 것이다.

7월13일에 윤필상 유자광 등은 연산군이 내린 어서(御書)를 받들고 김일손을 국문했다. 김일손이 말하기를 “사초(史草)에 이른바 ‘노산(魯山)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최맹한에게 들었습니다.”

김일손은 “노산군이 스스로 목매어서 자살하자 예(禮)로써 장사지냈다”는 1457년 10월21일자 세조실록이 거짓임을 직필하고 있다. 중종 때 문신 이자(1480∼1533)가 ‘음애일기’에서 ‘노산군이 자진(自盡)했다는 것은 당시 여우같은 무리들이 권세에 아첨하느라고 지은 것’이라고 평했으니, 김일손이 얼마나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이어서 김일손은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유자광(1439∼1512)은 ‘충분(忠憤)’이란 단어에 촉각(觸角)을 곤두세웠다. 그는 ‘조의제문’을 세조 체제를 부정하는 글로 몰아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인조실록 1634년 12월11일자 참조)

7월15일에 유자광은 연산군에게 ‘조의제문’을 구절마다 풀이해서 아뢰고, 6년 전에 죽은 김종직(1431∼1492)의 죄를 다스리고 문집 및 판본을 다 불태워버리라고 청하였다.

그러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읽어보자.

“정축년 (1457년) 10월 어느 날, 나는 밀양에서 경산(京山)으로 가던 길에 답계역(踏溪驛)에서 자게 되었다. 그 날 밤 꿈에 어떤 신(神)이 일곱 가지 문채가 있는 복을 입고 훤칠한 모습으로 나타나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로 이름은 심(心)인데, 서초패왕(西楚?王) 항우에게 시해되어 빈강에 잠겼다’ 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잠을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거리가 만리나 떨어져 있고, 시대 또한 천년이 나 뒤져 있는데, 꿈속에 나와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조짐일까?’

또한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는 말은 없은데, 정녕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제문을 지어 의제의 혼령을 위로하노라.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