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세르비아(完)

발칸 9개국을 가다…<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⑩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세르비아(完)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이 만나는 ‘고풍스런 도시’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코토르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 세례받았던 스코페
세르비아 국방부 건물엔 내전 포격의 잔재 그대로

▶몬테네그로 코토르
지난 6월 2일 오후에 몬테네그로(Montenegro) 코토르에 도착했다.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에는 점박이가 많다. 아드리아 해 코토르 만에 위치한 코토르는 요새지로서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도시가 번영하기 시작한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요새를 건립하면서 부터이다.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몬테네그로 코토르 유적지 외관. 성벽 위 산등성이 기암괴석과 강물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979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코토르의 구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성벽에는 ‘날개 날린 사자’ 조각이 새겨져 있다. 코토르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징표이다.

 

성벽에 새겨진 ‘날개달린 사자’

입구 문 위에는 ‘1944.11.21.’이라고 적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로부터 몬테네그로가 독립한 날짜 표시 같다.

 

성벽 입구 문

구시가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궁전과 교회가 아름답다. 일행은 시계탑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틈을 이용하여 필자는 성 니콜라스 정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4개의 초상화가 있다. 정교회 직원에게 물었더니 4대 복음서를 쓴 마태 · 마가 · 누가 · 요한이란다. 그런데 사자 문장을 한 마가는 알겠는데, 다른 이들은 알 수가 없다. 직원에게 다시 물었더니 흰 수염을 하고 독수리 문장이 있는 이가 요한이란다.

 

성 니콜라스 정교회 내부

 

 

사도 요한의 초상화

▶마케도니아 스코페
6월 4일에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를 방문했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1997) 기념관부터 갔다. 이 기념관은 테레사가 세례를 받은 곳이다. 스코페에서 태어난 테레사는 알바니아계 출신으로 9살 때 아버지가 정치운동에 휘말려 사망했다. 그녀는 1928년에 아일랜드로 가서 동정 성모회에 입회하여 ‘테레사’라는 이름을 얻었고, 1929년부터 인도 캘커타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1948년에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창설하고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검은 수녀복 대신에 인도에서 가장 미천한 여성들이 입는 흰색 사리를 입고 헌신하여 ‘빈자(貧者)의 성녀’로 추앙받았다.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1997년에 선종했는데 2016년에 성인이 되었다. 2017년에 인도 캘커타는 테레사 수녀 20주기를 맞아 그녀를 캘커타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테레사 수녀 기념관 입구
테레사 수녀 동상에서 필자부부

이어서 중앙광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엄청 큰 알렉산더 대왕(BC 356∼323) 기마상이 있고 근처에 아버지 필립 왕 조각상도 있다.
 

스코페 중앙광장의 알렉산더 대왕 기마상

그런데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고 인도 서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북부에서 태어났고, 그리스 북부가 마케도니아로 알고 있는데, 1991년에 독립한 마케도니아가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그를 추앙해도 될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과연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는 외교 분쟁이 심각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국명이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을 암시한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유럽연합(EU)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입도 좌절되었다. 마케도니아가 유엔에 가입할 때도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공화국’ 이라는 국명을 써서 간신히 가입이 허용되었다.

마침 필자가 마케도니아를 방문했을 때 마케도니아 총선이 있어 정권이 바뀌었다. 신정부는 마케도니아 국명을 바꾸는 국민투표를 고려하고 있다 한다. 그리스와의 외교 마찰을 최소화하고 EU와 NATO 회원국이 되기 위한 고육책인 것 같다.

한편 이슬람 지역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기 전 왼편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482?∼565) 조각상이 있다. 현지 가이드는 스코페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고향이란다. 스코페에 그가 만든 칼레성과 돌다리가 있단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조각상

유스티니아누스 황제하면,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소피아 성당을 지었고, 『로마법 대전』을 편찬한 인물이다. ‘정의(Justice)’라는 단어가 바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에서 유래되었다.

성모에게 소피아 성당을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 (이스탄불 성 소피아 박물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6월 4일 저녁에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에 도착했다.
베오그라드는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이 만나는 고풍스런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이 하얀 벽돌로 성을 쌓은 백색도시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이름이 베오(Beo 흰색) 그라드(grad 도시)이다.
6월 5일 아침 일찍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도로변 ‘코너 숍’ 벽에 ‘Fuck NATO’ 라고 낙서가 있다. NATO가 너무 미웠나 보다.
 

‘Fuck NATO’라고 적힌 코너 숍

세르비아는 1999년 3월24일부터 6월11일까지 78일간 나토(NATO)의 공습을 받았다. 이는 세르비아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코소보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알바니아계 1만 명을 인종청소하고 100만 명의 난민을 양산한데 대한 서방국가의 군사개입이었다.

원래 코소보는 인구 200여만 명 중 92%가 알바니아계 무슬림이고, 세르비아계 정교회는 7%에 불과함에도 세르비아계가 통치를 하고 있어서 1998년에 코소보 알바니아계가 독립 투쟁에 나섰다.

1999년 6월11일 공습에 항복하여 세르비아 군이 코소보에서 철수했다. 내전은 종료되었고 나토 평화유지군이 코소보에 주둔했다.

2008년 2월에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분쟁이 잠복되어 있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불가리아로 가는 버스 안에서 국방부 건물을 보았다. 포격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세르비아 국방부 건물

불가리아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그런데 휴게소 식당 이름이 ‘티토(TITO) 레스토랑’이다. 세르비아인은 유고연방 티토 대통령(1892∼1980)을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아, 옛날이여!
 

티토 레스토랑 외관

* 발칸 기행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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