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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장계(狀啓)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장계(狀啓)

“네가 꼭 가겠다는 것이냐?”

“예, 꼭 제가 가겠습니다.”

“백리, 이백리 길도 아니고 자그마치 이천오백 리 길이나 되는데?”

“그래도 제가 가겠습니다.”

광주목사(光州牧使) 권율은 단하에서 굳굳하게 읍하고 서서 의견을 굽히지 않는 정충신을 내려다 보았다. 체구는 작지만 차돌처럼 단단한 상체와 짙은 눈썹과 머루알처럼 까만 눈동자를 지닌 소년. 그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어떤 결기가 어려 있었다. 그의 이마는 햇빛의 반사를 받아 형형히 빛났다. “그냥 맨 몸으로 가도 보통 어려운 길이 아니다…”

그의 의지가 가상하긴 하나 떠나도록 결정하기에는 아무래도 주저되었다. 열일곱 살의 소년이 그 머나먼 적진을 뚫고 가겠다고 나서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너는 너의 길이 따로 있다. 목영(牧營)에서 할 일이 많다. 네가 가기에는 길이 너무 험하다.”

전라도 땅만 빼놓고 전 국토는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 적군은 점령한 각지에 군영지를 구축하고, 요소요소에 초소를 세워 수상한 자를 잡아가두거나 목을 베었으며, 마을에 들어가 소와 돼지를 끌고 가고, 군량(軍糧) 확보를 위해 곡식을 빼앗았다. 각 고을의 남자들은 군마의 길잡이나 짐꾼으로 징발되었으며, 여자는 가리지 않고 겁간을 했다. 전 국토는 이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충신의 생각은 달랐다.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위험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니 용맹과 담력을 키워야 한다. 그 기회가 지금이다.

-왜놈 군사들이 어린 소녀를 잡아가고, 이를 말리는 할아비를 칼로 베었다. 집안에 있는 씨종자까지 샅샅이 뒤져서 가져갔다. 포악성과 잔인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권율은 왜군이 저지르는 탐악질의 후방에 투입된 척후병의 보고를 받고 몸을 떨었다. 전쟁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먼저, 가장 많이 희생을 강요받는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저들의 잔혹성을 따지기 전에 이쪽의 방비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데, 조정(朝廷)은 그저 니 탓 내 탓 공방으로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있다. 그 사이 온 산천은 도륙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대도 살펴오겠습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꼭 살펴보겠습니다.”

권율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대체가 관군은 지리멸렬하고, 병력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도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긴 왕이 도망가고 있으니 꼭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임금을 정점으로 하여 힘을 모아야 하는데 왕이 저렇게 두려워서 피신하니 누구더러 대적해 겨루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인지 후방의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낱알 한 알까지 빼앗긴 백성들은 굶주린 나머지 사람의 시체를 거둬다 삶아먹는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한숨과 비탄이 산과 계곡을 메웠다.

그런데 임금은 벌써 압록강을 건너려고 날짜를 맞추고 있다. 그가 도강하면 조선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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