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Lamarck)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기린이 목이 긴 이유가 목을 자꾸 사용한 결과라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엄마가 선탠을 해서 피부가 까맣게 되면, 아이도 까만 피부로 태어나느냐는 조롱 섞인 질문에 대답이 궁했다. 결국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물관의 학예사로 초라한 삶을 마쳤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바다 건너 영국에서 다윈(Darwin)이 라마르크와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기린의 목이 긴 것은 목이 짧은 기린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 졌을 때, 높이 매달린 나뭇잎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린만이 살아남았고, 기린의 목이 긴 것은 실은 목이 긴 기린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 라마르크의 장례식은 몇 사람의 지인이 모여서 초라하게 치루어진 반면, 다윈의 장례식은 전 유럽의 저명한 인사 다수가 참석해 그의 명성에 걸맞게 치루어졌다.

그렇다면 다윈은 맞고 라마르크는 틀린 것일까? 물론, 부모의 획득형질이 자손에게 그대로 유전되는 것은 아니니 라마르크의 주장이 반드시 맞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영어선생의 아이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핀잔을 듣는 일이 흔하고(내 경우가 아니길!), 피아니스트의 아이들이 피아노를 유별나게 잘 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같은 유전자에서 시작한 인류가 유럽인은 흰 피부를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인은 검은 피부를 가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면 검은 피부와 흰 피부는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는가?

라마르크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진화의 연속성이었다. 부모의 획득형질이 그 다음 세대에 정확히 전달되지는 않지만 격세유전을 통해서라도 후세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실은 다윈을 통해서도 우회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만약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체의 생존이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다면 그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사용되었던 지혜 위에 또 다른 지혜가 쌓일 때, 그 개체가 다른 개체보다 생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재 정부와 여당은 과거와의 단절을 목표로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다. 관우의 언월도 같기도 하고, 여포의 방천화극 같기도 한 적폐청산이라는 무기는 이제 그 자체로 정당성을 담보 받아서 그 칼날 아래 모든 것은 적폐가 된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대형 화재로 인한 불상사가 생길 때마다 불법주차를 언급한다. 그리고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서 피해가 커졌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주택가 주변을 한번만 돌아보면 그런 지적이 얼마나 무책임한 지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주차할 공간이 넉넉한데 몇 발자국 더 걷기 싫어서 도로변에 주차하는 것이 아니다. 주차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불법주차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소방차가 크기 때문에 골목길을 통과하기 어렵다면, 그리고 제한된 골든타임 안에 현장에 신속히 도착하려면, 불법주차를 언급하기 전에 좁은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소방차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최소한의 장비로 꾸려진 2인1조 오토바이 선발대를 화재현장에 먼저 파견하는 방법도 있고, 골목을 누빌 수 있는 간이소방차를 제작할 수도 있다. 그들이 화재를 초등 진압한 후에, 기동성은 떨어지지만 화재제압 능력이 뛰어난 현재의 소방차들이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힘을 합하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과거라는 이름의 덩치 큰 소방차가 있고, 현재라는 이름의 간이소방차가 있어야, 안전이라는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에게 묻고, 시민에게 듣기 전에, 국가경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사태의 본질을 먼저 파악하고, 적용 가능한 과거 위에 새로운 현재를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거칠게 말하면 그 방안을 찾아내라고 월급을 주고, 권력을 맡기고, 의전을 행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해서 새로운 현재를 건설한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오늘의 적폐청산 주체가 내일의 적폐청산 객체가 되지 않는다.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는 연속성 앞에 겸허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과거의 부정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고, 앞으로 다가 올 미래를 훨씬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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