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클릭’ 바늘도둑에서 소도둑으로

‘조금씩 클릭’ 바늘도둑에서 소도둑으로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갓난아이가 남몰래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본래 성품이 악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혹 모르겠다. 타고난 성품의 상태는 선하지도 불선(不善)하지도 않은 순백의 백지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성무선악(性無善惡)이다. 선악 없음이 본래 성품이다. 보통 ‘선악’이라 하지만, ‘선’과 ‘악’을 서로 대립개념처럼 병렬로 놔서 마음이 영 불편하다. ‘선’과 ‘불선’으로 표현함이 가치 중립적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땅에 떨어졌을 때, 그 빗물이 흐르는 방향이 하늘에서 이미 정해졌을까? 경사도가 지극히 작을지라도 빗물은 기울어진 지면의 방향으로 흐름이 자연스럽다. 지면의 경사도는 빗물에 대한 최초의 자극이다. 자극이 어떻게 지속해서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빗물 흐름의 방향은 결정된다.

갓난아이는 하늘에서 오는 빗물과 같다. 빗물 흐름 방향이 지면의 상태에 좌우되듯이, 갓난아이의 성품은 엄마와 아빠의 상태에 자극을 받아서 발달한다고 봐도 좋겠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권을 쥔 엄마와 아빠의 가치 기준에 맞춰 조금씩 클릭하면서 부모를 닮아간다. 부모·자식의 외모 닮음은 유전적 소양 탓이 크겠지만, 자식이 부모의 가치관을 내면화함은 부모 가치관의 자극에 따른 반응, 즉 ‘조금씩 클릭’이 누적되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은행에 갓 들어온 신입 행원은 선배 행원, 임원, 행장 등의 가치관이라는 자극에 반응하면서 은행의 조직문화를 익혀간다. 상사의 자극에 반응하는 생활이 직장생활이다. 때로는 상사의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자극을 받더라도, 그 자극이 자신의 가치관에 크게 배치되더라도, 생존 차원에서 조금씩 클릭하면서 잘 처리하는 기량을 키워간다. 물론 ‘나중에 저 상사와 같은 위치에 오르면, 내가 겪었던 온당치 못한 자극을 주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할 거다. ‘조금씩 클릭’이 계속 누적되면, 상사로부터 오는 잘못된 자극이 잘못이라는 점도 모를 정도로 인식이 무뎌짐이 십상이다.

“아빠가 면접위원…KB국민·신한·하나 등 은행 채용비리”, ‘ㄷ은행에선 인사담당 임원이 자녀의 면접에 면접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주 27일자 어느 신문기사의 제목이고 핵심이다. 은행은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기에 사적 소유기업이라 할 만하나 그 속성은 개개인의 금융활동을 매개하는 기관이기에 공공성이 강하다. 준공공기관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양파껍질 벗기듯이 드러나는 각종 공공기관의 권력형 채용비리를 보면서 자괴감으로 괴로웠을 뭇 부모, 분노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힘이 풀렸을 청년의 모습이 망막을 때린다.

왜 자괴감과 분노가 생기는가? 우선 사회적 신뢰의 상실이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다. 불충분한 사회적 자본은 우리가 선진사회로 가는 길목의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을 디딤돌로 전환하지 않으면 현재 우리가 겪는 가슴을 쥐어짜 내는 아픔은 조만간 끝나지 않을 거다. 둘째, 공공기관이다. 공공(公共)의 원뜻은 숨김없이 드러내놓고 함께함이다. 말하자면, ‘공공’은 공개에 기초한 연대이다. 권력형 채용비리는 어둠 속에 몸과 맘을 숨기고 자기 혼자 살겠다는 몸부림이다. 셋째, 부적절한 인재의 채용은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서비스의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품질 저하의 고통은 공공의 주체인 국민의 부담이다. 넷째, 사적 기관에서 채용비리가 벌어졌다면 모르겠다. 사적 소유 기업은 이윤추구가 우선이고 공공성은 부차적이기에 사기업에서 채용비리는 그 자체로 성립하기 힘든 개념이다. 유수의 사기업에서 권력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지 않으면 이윤추구 행위가 저해될 테니까. 설사 어떤 청년이 그렇게 사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버티기 어려울 거다.

자녀의 면접에 채용 면접위원으로 참석한 ㄷ은행 인사담당 임원은 평사원 시절에 그런 자괴감과 분노를 경험하지 못했을까? 십중팔구, 아니리라. 아마도 그 임원은 ‘조금씩 클릭’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분노의 대상으로, 공공의 적으로 변질됐을 거다. ‘조금씩 클릭’은 두렵고 무섭다. 그 누적적 인과는 선한 존재를 불선한 존재로 전환하는 추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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