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8>-제3장 의주로 가는 길

황룡강에 이르자 바람이 소소했다. 황룡강은 영산강 수계에 속하며, 영산강의 상류쪽 지류다. 장성군 북하면에서 시작되고, 광주로 흘러들어 광산 동남부를 관통한 다음 평림천과 합류하면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늦가을의 기운이 강물에 어리고 있었다. 주름을 잡고 밀려가는 강물이 꽤 차갑게 느껴졌다. 들판에서는 늦은 추수가 한창이었다.

1592년 늦가을, 정충신이 빠른 걸음으로 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신새벽에 길을 나서 낮 무렵에 갈재에 이르렀으니 한달음에 칠십 리 길을 달려온 셈이다. 멜빵을 한 망태기를 짊어져서 편하긴 했으나 걸을수록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망태기 부피로 보아 열댓 근은 되어보였다. 장로(長路)인데 준비없이 떠난다고 해도 갈아입을 옷나부랑이, 침구류와 짚신을 갖추었다.

정읍 태인 김제 부안 여산을 지나자 큰 벌판이 나타났다. 행인들이라곤 눈에 보이지 않아 그의 모습이 더 도드라져보였다. 그래서 낮에는 산으로 들어서고 밤에는 길로 내려와 걸었다.

종일 걷는 만큼 며칠 후부터는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허기가 졌다. 왜 병력은 여산 북부에서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정충신은 동태를 파악할 겸 밥도 얻어먹을 겸사겸사로 왜의 진중으로 들어갔으나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진중에는 사역꾼으로 징발된 조선인들이 각종 노동에 동원되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정충신과 행색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병영 주변으로 해자를 파는 농민, 겨울을 나기 위해 짚으로 야영을 설치하고, 한쪽에선 장작을 패고, 수백 명이 밥 먹을 수 있는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 중에 왜군은 질서정연했고, 말없이 절도있게 행동했다. 조선인은 그들에게 얼씬도 못했다. 그렇게 통제되고, 차별화되었다.

눈치를 살피며 누룽지 한 주먹을 얻어서 길을 재촉하니 드넓은 논산벌이었다. 논산벌 끝자락의 왼편으로는 부여 송간 이인 홍성 예산이 이어지고, 오른 쪽으로는 월암 계룡 공암 종촌 용포 부강이었다. 그 사이를 지나니 긴 띠처럼 풀어진 금강이 나타났다. 물은 맑고 풍부했다. 피비린내 나는 세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강은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면 공주 북편이고, 오른 쪽은 정안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날씨도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금강 유역의 들판에는 농부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남부여대(男負女戴), 피난을 떠났거나 남은 자는 무구(武具)와 군량미 짐꾼으로 징발되었을 것이다. 벌써 마을은 기근이 시작되었다. 전라도 땅과는 완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나루에 이르자 나루터 언덕배기에 왜의 병사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그 한편에선 도강자를 검문하고 있었다. 사뭇 무겁고 공포스런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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