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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9>-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9>-제3장 의주로 가는 길

“넌 누구냐?”

정충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를 불러세웠다. 돌아다보니 왜의 초소 수장(守將)이었다. 그가 서투른 조선말로 물었다.

“나는 나루터 초소장이다. 어딜 가는 거냐?”

정충신이 머뭇거리자 그가 정충신을 훑듯이 살피더니 물었다.

“이 난리에 거지가 자유롭게 이동하다니, 밥 얻어먹을 곳이라도 있느냐?”

헤진 옷으로 변복을 했으니 영락없는 거렁뱅이 꼴이고, 얼굴과 몸에는 시커먼 생 옻나무진을 발랐으니 토인 그대로였으며,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났으니 고약한 들짐승이 움직이는 꼴이었다. 그러나 초소장은 검문자답게 그를 거지 따위로 보지 않는 태도였다. 초소장이 초소 옆 평상에 앉아있는 중년남자를 불렀다.

“역관, 이리 오라.”

역관을 곁에 세워놓고 진지하게 심문할 모양이었다. 역관이 다가오자 그가 다시 물었다.

“야, 거렁뱅이 새끼야, 거지 행색으로 어디 나서는 것이냐?”

조선인 역관이 그대로 그에게 물었다. 거지행색? 정충신은 물러서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지를 거지라고 부르면 성질 나지요. 애꾸눈을 애꾸눈이라고 부르고, 외다리를 외다리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거지를 거지라고 부르지도 못하다니, 네가 네 나라 의적이라는 홍길동이라도 되느냐?”

“그거 무슨 소리요? 홍길동은 무슨 뚱딴지요?”

“애비를 애비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헛수작 말고 도강패(渡江牌)나 신표(信標)를 보이거라.”

“거지가 무슨 신표가 있다고 그려?”

“건방지구나. 보아하니 넌 결코 거지가 아니다.”

“그럼 정삼품이라도 된단 말이오?”

“이놈 보게. 거지꼴에 정삼품이라니. 너는 결코 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위는 언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법이거늘, 니 입에서 정삼품 얘기 나오는 것 보니 넌 위장을 한 세작이거나 정찰병이다.”

“우리 장타령도 모르시오?”

정충신이 불쑥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그가 역관에게 물었다.

“장타령이 무엇인가.”

“벼슬아치를 풍자하는 서민들의 타령이요. 그중에 탐악질에 계집질한 타락한 정삼품 벼슬아치들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요. 그래서 이 자가 정삼품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정충신이 배포있게 타령을 읊조렸다. 가볍게 춤까지 추었다. 철저한 위장술이었다.



어허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어화 이놈이 이래 봬도 정승판서의 자제요

팔도 감사를 마다하고 돈 한 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그래도 저 자의 언어는 거지의 언어가 아니라니까.”

초소장은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떡할 거요.”

“너를 수색해야지.”

그가 이번에는 진지 주변에서 창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초병 둘을 소리질러 다가오라고 명령했다.

“이 자를 샅샅이 뒤져라. 아무래도 이상하다. 옷을 뒤지고 망태기를 빼앗아라. 소지품들을 잘 살펴라.”

“남의 귀한 물건을 그렇게 다루면 안되지요. 당신에겐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귀한 물건이오. 나를 천하지 않게 고상하게 보는 것은 고맙지만, 그런 만큼 내 몸을 함부로 뒤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소.”

“꼴에 말은 하는구나. 개수작 말아.”

“날 벼슬아치로 발령냈으면 탕건이나 하나 구해주쇼.”

“햐, 이새끼 봐라. 뒤지면 알아, 이놈아.”

초병들이 그에게 다가들어 바랑을 빼앗고 옷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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