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0>-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정충신이 아예 뒤지기 좋게 훌러덩 옷을 벗었다. 작지만 단단한 근육질의 체구가 드러났다. 그의 체구를 보고 초병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흠잡을 데 없는 다부진 몸뚱이인 것이다.

“뭘 보고 놀래쇼? 편하게 뒤지쇼.”

“과연 너는 거지가 아니다. 운동으로 다진 몸매를 보니 뒷골목 패거리거나 군병 같다. 하지만 사루마다는 입어라!”

초소장이 소리쳤다.

“사루마다는 옷이 아니란 말이오?”

두 초병이 또다시 정충신의 배포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입어 이놈아.”

초병들이 옷을 뒤진 끝에 말했다.

“아시가루(조장 계급)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초소장이 화를 냈다.

“조센징들 하는 수작 몰라? 설렁설렁 조사하면 나오겠냐? 건성으로 조사해서 나올 정도로 저 놈들이 감추겠냔 말이다. 빤한 거짓말에 변복 속에 소지품을 넣고 바느질을 해버리면 감쪽같이 속지. 다시 뒤져봐.”

초소병들이 다시 달려들어 정충신의 옷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잘들 한다. 이래 입으나 저래 입으나 거지 옷은 마찬가지니 마음대로 찢어라. 그러면 새 옷으로 갈아주겠지.”

“나카무라 아시가루 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찢어진 옷을 내려다 보더니 나카무라 초소장이 말했다.

“돌려줘라.”

병졸이 그에게 찢긴 옷을 건넸다. 그러자 정충신의 주먹이 갑자기 허공을 가르더니 초병의 눈텡이에 떨어졌다. 그가 에구구 하며 눈을 싸안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옷을 찢었으면 새 옷을 내놔야지, 이걸 옷이라고 주냐? 일본이란 나라의 예의범절이 형편없군. 이런 걸레는 누구도 안입는다.”

그 말과 함께 다른 놈에게도 한방 날리려는데 초소장의 기다란 칼이 그의 턱밑에 바짝 겨누어졌다. 칼날이 햇빛의 반사를 받아 빛났다.

“이놈이 보통 놈이 아니구나. 움직이면 니 목이 날아간다. 꼼짝 말고 꿰입어라!”

정충신이 도리없이 너덜너덜해진 옷을 꿰어입자 더 사나운 꼴이 되었다.

“거지에게 어울리는 옷이다. 마지막으로 저 바랑인지 망태기인지도 뒤져라.”

초소장이 두 초병에게 다시 명령했다. 초병들이 달려들어 망태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역관이란 자는 시시하다는 듯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초소 언덕에 놓여있는 평상으로 가 벌러덩 누웠다. 낮잠을 자두려는 수작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아니면 허무감에 젖은 듯 현실에서 초연해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선인이 철두철미 방관자적 위치에 있는 것이 정충신은 어쩐지 절망감이 들었다.

“망태기는 내 살림 밑천이다. 좋은 말할 때 내놓아라.”

“이건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다.”

망태기 속을 뒤적이던 다른 자가 말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것이 나왔습니다.”

초병이 망태기 깊숙이에서 두루마리 종이를 끄집어냈다. 드디어 찾아냈다는 듯이 초소장이 버티고 서서 정충신을 노려보았다. 언어, 행동, 눈빛으로 보아 너는 결코 거지가 아니며, 거지로 변장한 다른 존재로 보았다는 자기확신이 맞아떨어졌다는 자부심이 그 표정에는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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