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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2>-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2>-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정충신이 아홉 살 되던 해 목영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명 한 필만 있었으면, 무명 한 필만 있었으면…”

몰락한 집안, 밥먹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여덟 살 때부터 광주 목영 동헌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본의아니게 노비 아닌 노비였다. 목사관의 거실에 앉아 책을 펼쳐들었던 목사는 부엌에서 흘러나온 흥얼거림을 처음엔 무심히 흘려들었으나 장단이 섞인 그 가락이 사연이 있는 듯 애절해서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지깽이로 바닥을 치면서 한탄하는 식으로 ‘무명 한 필만 있었으면’ 하는 흥얼거림이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목사는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어보았다. 추운 겨울인데 의복이 남루한 소년이 아궁이 앞에서 장작불을 넣는 사이사이 무명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사가 물었다.

“무명 한 필만 있으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충신이 얼굴을 들고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러면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 토시, 이불과 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버선 행전까지 만들 수 있는가?”

겨울을 나려면 발 회목에서 장딴지까지 둘러치는 행전이 아랫 것들일수록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그것까지 물어본 것이었다. 번듯한 헝겊으로 소맷부리처럼 만들고 위쪽에 끈 둘을 달아서 돌려 맨 각반이지만 위 아래가 치수가 다르니 만들기가 까다로운 것이었다. 버선은 더 어려웠다.

“물론입죠. 무명 한 필만 있으면 다 만들 수 있습니다요.”

“그렇다면 무명 한 필을 내어줄테니 네가 말한대로 다 해보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요.”

“만약에 못한다면?”

“감나무 홍시감을 모조리 따놓겠습니다.”

“어허, 기특한 녀석이로군. 장정도 다 못하는 일인데,,,, 그래서 남겨둔 것인데...”

무명 한 필을 내어준다 한들 어린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한 마장이나 떨어져 있는 그의 집으로 가지고 갈 것인가. 그래서 사또가 다시 물었다.

“네 힘으로 무명 한 필을 어떻게 메고 가겠느냐?”

충신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어만 주시면 가지고 가겠습니다.”

“토막을 내서 가지고 가면 무효니라.”

“물론입지요.”

사또는 무명 한 필을 내놓게 하여 툇마루에 올려놓았다. 넉히 스무 근은 되어 보였다. 어린 아홉 살 아이가 메고 가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나 정충신은 광목을 풀더니 상단 끝머리를 몸에 감아 묶고 앞으로 나아갔다. 광목이 풀리는데 더 이상 나가지 않으면 광목을 놓고 되돌아와서 다시 나머지 광목을 몸에 두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모두 집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목사는 무릎을 쳤다.

“저 아이가 무엇인가 될 아이로다.”

며칠이 지나자 목사가 정충신을 불렀다. 거실로 들어온 그의 행색이 달라져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이 어울리고, 총기가 더 묻어나 보였다.

“옷을 해입었겄다?”

“네. 이 옷이 그 무명 한 필로 지은 것입니다.”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 토시 행전까지 만든다고 했지 않았느냐? 이불과 요도 만들었단 말이냐?”

사또는 믿어지지 않아서 되물었다. 무명 한 필로 이불과 요를 만들고 두루마기를 만든다는 것은 베 한 필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네. 만들었지요. 두루마기를 덮으면 이불이 되고, 바닥에 깔면 요가 됩지요.”

“오호 그래, 과연 영특한 녀석이로군.”

사또는 크게 웃으며 충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기지와 지혜를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이 따위 왜놈 감시병들도 따돌릴 수 있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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