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준비하는 봄

‘나눔’으로 준비하는 봄

<정준호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입춘서설’이라 했으니 아마도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는 옛 어르신들의 바람이 깃든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막바지에 이른 겨울의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집니다. 아직 음력으로 정월이 남아 있으니 장독대도 깨뜨린다는 정월추위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까지 견뎌야 그래도 온전한 봄에 이를 것입니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이 지금의 겨울날씨와 닮았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법감정도 그렇거니와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역시 이전의 과거청산을 위한 여러 위원회들의 활동 결과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을 두고 3-5법칙이라 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법조인의 한사람으로 사법부의 결정에 일방적으로 정치, 사회적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온당치 못한 것 같지만 1심과 다른 내용의 판결을 바라보는 국민법감정과 적폐청산을 향한 국민열망에 비추어 비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예상되는 결과도 그렇습니다. 전일빌딩에 남아 있는 탄흔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헬기 기총소사임을 확인하였음에도 이를 실행한 과정 자체는 확인하지 못하였고, 공군비행단 출격 대기에 대해서도 언론을 통해 관련자가 증언으로 확인했음에도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적폐청산도, 불행했던 과거의 진실을 확인하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은 여전히 적폐와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존재가치를 드러내면서 자기자리를 확보하려는 정치인들 역시 편 가르기로 본질을 흐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약속한 5·18 진상규명 특별법 처리도 걱정됩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명절의 참맛은 어울려 사는 사람들끼리 작은 정성이라도 나누는 것에 있어야 할진데 앞서 말씀드린 이런저런 이야기에 정작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서민의 생활경제 어려움과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적폐의 쇠사슬 역시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 있어 올해 설 명절의 밥상도 여유와 나눔의 덕담보다는 세상을 향한 푸념과 정치에 대한 분노로 채워질 가능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해 일부 언론과 특정 정파에서는 적폐청산의 ‘국민 피로감’을 교묘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의 최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이 만들어 낸 촛불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주목해봅니다. 촛불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나라를 나라답게 하는 것이었고,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워 공정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정권교체의 결과에 안주했다가 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는 촛불혁명의 목표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 과정을 올바르게 견인하는 것도 촛불을 들었던 우리 시민들의 몫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문재인 정부가 광주를 위해 했던 많은 약속들을 지키게 하는 것도 결국 광주시민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날은 겨울과 봄 사이에 자리해 있습니다. 옛 어르신들의 기억으로는 보릿고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보릿고개는 가진 자들이 고리대금으로 횡포를 극심하게 부렸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서민들이 서로를 북돋고 초근목피라도 나누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때였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가진 자들의 횡포가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들러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장을 녹이는 것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따뜻한 햇살입니다. 어쩌면 보릿고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서민들의 ‘나눔’이 바로 따뜻한 햇살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눔’은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보릿고개를 함께 넘었던 어르신들의 지혜처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꼭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지혜이고 힘일 것입니다. 설날 이른 아침에 찾아 든 까치가 희망의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것도 옛 어르신들이 여러 그루의 감나무 중에 한 그루는 그 까치들을 위해 감을 따지 않고 남겨두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나눔’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새봄의 희망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올해의 설 명절은 ‘나눔’으로 희망을 키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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