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5>-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성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어른이 말하면 그에 대한 대답을 하고 다른 말을 해야지, 어른 말을 자르고 바꾸어 말하면 좋은 태도가 아니다. 왕이 도망간 것은 사실 아니냐?”

정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더라도 극비사항이고, 또 사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선조실록 133권 18장엔 ‘壬辰年 賊虜充斥 君父蒙塵 國勢급급 危如一髮(임진년에 왜적이 만연하여 왕은 몽진하고 나라 형세는 급급하여 위태롭기가 실낱 같았다)’라고 몽진을 공식화하고 있다.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요. 다만 성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아야 따를지 말지를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오면 된다.”

산 속을 더듬어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또다른 작은 나루터가 나타났다. 억새가 우거진 습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수변 건너편에 강물이 숨듯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한쪽에 배가 두 척 떠있는데 모두 비어있었고, 주변은 쓸쓸했다. 그가 말없이 배 한척을 뒤집어 물 속에 가라앉힌 뒤 다른 배에 오르자 정충신도 훌쩍 배를 타고 올랐다. 능숙하게 노를 젓던 장정이 말했다.

“다른 놈이 쫓아오면 안된다.” 배 하나를 가라앉힌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가 덧붙였다. “이쪽은 원수산이고 강 건너엔 전월산이다. 넌 내가 두렵지 않느냐.”

정충신은 그런 그를 홀린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보아하니 원족(遠足) 가는 것 같은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느냐. 놀러가는 것 같지는 않고…”

“어떻게 멀리 간다는 것을 아십니까.”

“망태기에 달아맨 짚신 다발은 무엇이냐. 거렁뱅이가 짚신 다발을 메고 다니는 것 보았느냐?”

“그래서 왜병이 의심했군요.”

“그렇지. 하지만 너의 눈이 또한 그들을 의심케 했다. 거렁뱅이 눈이 아니다. 또 침구류는 무에냐. 떠도는 걸인이 깨끗한 침구류라니. 거지로 변장하고 변복을 하고 변신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한다… 어쨌건 짚신 몇 켤레는 나를 다오.”

충신은 그제서야 짚신 켤레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양 갑니다요. 짐꾼이라도 해얍지요.”

“한양은 더 꼴이 험하다.”

강을 건너 전월산을 벗어나 한참 걸으니 종촌이었다.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젊은 아낙네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숨져있었는데, 아이는 엄마의 젖을 물고 잠든 듯이 죽어 있었다.

“전쟁은 이렇게 여자와 어린아이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희생된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그들은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소나무가 빽빽했고, 곧바로 산은 소백산맥으로 이어져 멀리는 마곡사, 지근간에는 계룡산과 잇닿아 있었다. 연봉들이 아스라했다. 종촌의 외곽 시냇가에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다.

골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그가 농주를 한말 시켰다. 그제서야 정충신은 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봉두난발한 머리지만 이마에 주름살이 굵게 패이고 이목구비가 번듯한 미남자였다. 골상 또한 커서 통이 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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