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7>-제3장 의주로 가는 길

그가 껄껄 웃더니 말했다.

“내 정체를 알고 싶으냐?”

“네.”

“아까 말하지 않았더냐. 길삼봉이나 최영경, 이계삼이 싫다면 금성 성님이라고 불러라.”

“금성 성님?”

“그렇다. 나주가 고향이다. 나는 네가 한양이 아니라 의주로 가는 것을 알고 있다.”

정충신은 속으로 주춤했다. 어떻게 그가 자신의 비밀 행선지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조금은 두려워서 말을 바꾸었다.

“나도 금성 정씨입니다. 나주가 본이지요.”

“금성 정씨, 알고 있다. 하지만 의주 가는 길이 보통 어려운 길이 아니다.”

“내가 의주로 간다는 걸 어떻게 아시고, 의주 의주 하십니까. 사실은 한양 갑니다.”

그러나 그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저를 아시는 분입니까.”

“넌 질문이 많다. 그러려니 알고 어서 술이나 마셔라.”

그가 또다시 바가지에 술을 가득 떠서 마신 뒤 총각김치를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정충신도 술을 들이켰다. 그 역시 온 몸이 달아올랐다.

“먹어본 솜씨구나.”

“마셔봤지요. 대장부가 주독에 빠져선 안된다고 해서 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공부 좀 하느라고요. 사서삼경 뗄 때까정은 입에 대지 않기로 속으로 약조했지요. 열다섯 때부터 술을 댔지만 쓴 약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허허허, 너는 자기 절제가 분명한 청년이군. 보아하니 의절있는 남자로 자랄 것이다.”

“의절있는 남자요?”

“그렇다. 요즘 사나이들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고 있는데 넌 다르다. 젊은이들 내일에 대한 희망도 기대도 없이 막가는 인생처럼 허무하게 세월을 죽이고 있어. 그런데 넌 달라. 행색이 초라하지만 너의 눈을 보면 안다. 괜찮은 관상이다. 장차 무엇이 되려고 하느냐.”

“저는 금성 성님 정체를 알기 전에는 무슨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충신은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어떤 피치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우뚝 솟은 코가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외로워 보이고, 눈엔 우수와 슬픔이 배어있었다. 그가 뚱딴지같이 물었다.

“나랏님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저 하늘같은 분이시니, 하늘같이 모셔야 할 분이지요. 그것이 백성의 본분입니다. 그게 바로 충(忠)이고요.”

“수신서와 같은 얘길 하는구나. 꼭 하늘같이 모실 필요는 없다.”

“네?”

“너는 하사비군(何使非君)이란 뜻을 아느냐?”

“하사비군? 무슨 뜻입니까?”

“그건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는가, 라는 뜻이다. 임금을 다르게 받들 수도 있다는 뜻이니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약해서 말하면 백성이 왕이라는 뜻이지. 백성이 임금을 갈아치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백성이 왕이 될 수 있다.”

“어찌 그런 역모의 말씀을... 금성 성님은 역모꾼 아닌가요? 나를 어떻게 믿고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정충신이 놀란 눈으로 묻자 그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 다만 나는 역모꾼도 아니고, 반역자도 아니다.”

등잔불에 어리는 그의 이마에 허허롭고 쓸쓸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래도 그런 말씀은 당최 아닙니다. 무섭습니다. 제가 밀고라도 하면 어떡하실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사람 됨됨이를 안다. 너는 밀고질이나 해서 밥벌어먹고 살 쪼잔한 상이 아니다. 왜병들과 대거리할 때 이미 알아보았느니라. 넌 거지로 변장한 소년 의인이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천지분간이 안되는 얘기는 안되지요. 도대체 금성 성님 정체가 무엇입니까.”

“알고 싶으냐?” 그러면서 그가 자리를 고쳐 앉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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