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26. 진도 김영숙씨>

26.‘전통 떡’ 진도 김영숙씨

우리나라 제조·가공·조리 최고 ‘명인 반열’ 등극

50년 전 ‘복령조화고’복원…전통 떡 모형 확립

고품질 원료 직접 생산…거칠면서 담백한 깊은 옛 맛
 

50년 전부터 가내 수공업 형태로 ‘복령조화고’ 복원해 전통 떡 모형 확립한 전남 진도군 김영숙(72) 명인이 그 중심에 있다. /전남도 제공

우리나라에는 전통식품 제조·가공·조리의 최고라고 인정한 명인들이 많다. 떡과 차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전통장이나 술을 담그는 등 여러 분야에서 제각기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떡 부문은 50년 전부터 가내 수공업 형태로 ‘복령조화고’를 복원해 전통 떡 모형 확립한 전남 진도군 김영숙(72) 명인이 그 중심에 있다.

전통식품 명인 제53호인 김 명인은 50년 전 시어머니에게 떡과 한과 만드는 법을 배워 발전시켰다.그의 떡은 국무총리가 우리나라 주재 136개국 대사에게 선물하기도 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명품이다. 값싼 재료를 쓰고 맛이 가벼운 요즘 떡들과는 다르다. 달달하거나 말랑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다소 거칠지만 담백하면서 깊은 옛 맛이 살아 있다. 가격이 보통 떡보다 높지만, 먹어 보고 “돈 값을 하고도 남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가 만든 떡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청정 해풍을 맞고 자란 원료를 이용,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원료인 쌀, 콩, 팥, 쑥, 울금, 구기자 등 대부분은 지역 농민과 그가 직접 생산한 것으로, 좋은 품질만 고집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전통 떡을 손수 빚어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옛 손맛과 정성을 가득 담아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진도 큰 집 시집살이서 ‘큰 음식’배워=지난 1966년 전통과 예술의 보배섬 진도에서 시집살이을 시작한 김영숙 명인은 대농인 시댁의 농사를 익히며 대대로 이어져오는 집안의 음식을 배웠다. ‘근대화’의 열풍에 전통이 스러지는 현상은 음식문화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장되거나 사라져가는 전통음식을 되살리는 일에 주목한다. 지난 1980년 이런 노력은 농업기술센터가 운용하는 생활개선회의 일과 연결되면서 빛을 찾기 시작했다.

찬란한 남도 전통예술과 함께 ‘영혼의 고향’으로도 이름 높은 진도의 식품, 특히 제사 등의 의례에 활용되는 음식은 다른 지역의 여느 음식과는 달랐다. 신들을 영접하는, 그 깊이가 오래 스민 음식문화가 생활의 일부였던 터라 신식 요리에 밀려 전통이 바삐 사라져가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 회생은 가능했다. 김 명인과 같은 밝은 눈이 있어 다행이기도 했겠다. 그에게 진도의 음식문화는 마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의 떡은 이 지역의 전통 떡으로 시댁에서 늘 만들던 ‘복령조화고’에 바탕을 둔다.

복령조화고에 들어가는 복령은 40∼60년 된 죽은 소나무에서 기생하는 버섯으로, 이뇨, 강장, 진정에 효능이 뛰어나 한약재로 자주 쓰인다. ‘규합총서’, ‘동의보감’에도 나올 만큼 중요한 약재이고 식품의 원료다.

이렇게 잘 말린 복령을 절구통에 넣고 수십번 찧어 주면 복령조화고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복령가루가 만들어진다. 특히 김 명인의 복령조화고에는 복령가루와 멥쌀가루는 물론이고 연자육(연꽃 씨앗), 검인(가시연밥), 산약(마) 등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이 떡은 그에게서 아니면 맛보기 쉽지 않다.
 

김 명인은 지난 1992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진도 전통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전남도 제공

■‘진도 전통식품’설립…한식의 현대화·세계화 앞장=김 명인은 지난 1992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진도 전통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진도 특산물인 구기자를 활용한 장류, 떡, 한과 등을 내면서 전통의 현대화·세계화에의 응용을 본격화했다. 떡 해외수출의 난제였던 짧은 유통기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의 ‘굳지 않는 떡’ 기술을 이전받아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구기자와 함께 진도의 특산물인 울금과 검정쌀을 활용하는 식품도 활발히 만들고 있다.

김 명인은 진도 전통식품에서 제조하는 전통떡과 한과를 수출하기 위해 몸소 해외시장도 누볐다. 요즘은 매년 1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한다. 2013년 농공상융합 중소기업(수출용 떡 제품 개발), 2014년 중소기업청 수출유망 중소기업으로 인증받았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품질 향상과 규격화 등에 투자한 결과였다. 식품 만드는 일이 국제적인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명인은 지난 1992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진도 전통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진도 특산물인 구기자를 활용한 장류, 떡, 한과 등을 내면서 전통의 현대화·세계화에의 응용을 본격화했다. /전남도 제공

 

■“한식 세계화는 전라도 음식이 바탕돼야”=새 밀레니엄(2000년)이 채 당도하기도 전에 이미 대한민국과 전남도의 음식 분야 최고 수준의 여러 상을 휩쓴 ‘고수’의 이력서에 그가 ‘수료했다’고 적어 넣은 교육 내용이 참 신선했다.

지산농협 주부대학 제1기 과정(1997년), 전남대 남도전통음식연구 과정(2001년),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궁중음식 과정(2008년), 국제 양생사 약선요리 1급 자격증 과정(2008년), 농수산무역대학 제7기 과정(2009년) 등이다.

뭔가 이루고자 한다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의외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런 수련과정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겠다. 학교 마치면 공부를 놓아버리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조와의 차이일 것이다. ‘교육’말고도 그다 이제까지 해왔다고 적어 내민 ‘소개서를’보면 ‘명인’이라는 그의 국가 공인 이름표가 과연 헛되지 않은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명불허전이라 하지 않던가.

지난 2013년 전남도는 그를 ‘남도음식명인’으로 지정한다. 같은해 농림축산식품부도 제53호 ‘전통식품명인’칭호를 부여한다. 명실상부의 명인인 것이다.

김 명인은 “나라 문을 걸어 다는 ‘쇄국’의 정신으로 세계화는 꿈도 꿀 수 없듯이, 우리에게 손님으로 와서 귀한 가족도 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가진 능력과 ‘우리와 다름 점’들에 우리 사회가 문과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나라, 이 사회에 매우 중요한 기회라는 것이다. 그의 ‘공부’와 사업에서도 이런 열린 마음은 항상 큰 힘을 발휘한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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