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부터 꼴찌까지 '박수'...성숙한 대한민국

“최선 다했으니 만족” “정말 멋지다, 잘했다”

선수나 관객이나 함께 즐기며 응원 격려
 

21일 오전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 시즌 베스트를 기록한 최다빈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죄송합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5위에 그친 진종오 선수가 한 말이었다. 4년 전인 2012년 런던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던 그는 2회 연속 금메달에 실패하자 고개를 떨궜다.

진종오 선수 뿐만이 아니었다. 몇년 전만해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선수들의 입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리우올림픽 당시 여자 유도 세계랭킹 2위로 메달 유력 후보였던 김잔디 선수 또한 여자 57kg 급에서 탈락하자 “죄송합니다” 한 마디를 했다.

심지어 메달을 목에 걸어도 그랬다. 금색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 첫 유도 메달을 목에 건 왕기춘 선수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 죄송하다”고 토로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심석희 선수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금메달을 기대했는데 성적이 못 미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는 전반적인 양상이 다르다. 참가한 많은 선수들이 “죄송하다”라는 말보다는 “즐기겠다” “최선을 다했다” “만족한다”라는 말을 더욱 많이 하고 있다.

여자 쇼트트랙 맏언니 김아랑 선수가 대표적이다. 최민정 선수와 함께 여자 1500m 결승에 올랐지만 4위에 그쳤다. 0.1초가량 뒤처져 한탄을 할 법한데 그는 환하게 웃었다. “결과는 아쉽지만 만족할만한 경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불과 0.01초 차로 은메달을 딴 차민규 선수는 “다리만 좀 더 길었더라면 이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있다”라고 유머까지 구사하며 “순위권에 든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고 미소를 지었다.

메달권이 아닌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댄스 종목에 출전한 알렉산더 겜린-민유라 팀은 ‘아리랑’ 선율에 맞춘 안무를 선보였다. 총점은 147.74점. 전체 20팀 중 18위, 자신들의 공인 최고점(152.00점)보다 낮은 점수였지만 점수가 발표되자 이들은 환하게 웃었다.

시민들도 달라졌다. 과거엔 메달을 못 따거나 실수한 선수에게 비난을 퍼붓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수들을 격려하거나, 메달 여부가 아닌 개인 기록에 초점을 맞춰 올림픽 관전을 즐긴다.

‘골든 데이’로 기대를 모았던 쇼트트랙 여자 1000m와 남자 계주 5000m 경기가 모두 ‘노메달’로 마무리됐지만 시민들은 대개 ‘고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모(26)씨는 “노메달이면 어떤가. 충분히 잘했고 최선을 다했하면 됐다”고 말했다.

메달권은 아니지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시즌 베스트를 기록한 최다빈 선수나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와 프리스케이팅에서 자신의 최고점을 경신한 차준환 선수에게도 격려가 이어졌다.

안모(53)씨는 “메달이나 전체 순위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한 선수가 자신의 좋은 기록을 낸 것도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올림픽을 대하는 선수와 시민들의 달라진 모습을 두고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쟁사회를 벗어나고 싶은 심리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모두에게 ‘1등’을 강요해왔다. 그런데 최근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다는 생각, 1등이 아니어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라며 “그 분위기가 스포츠에도 반영돼 젊은 선수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과거와는 다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고 관측했다. /뉴시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