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속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최혁 남도일보 주필>
 

1987년 민정당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후보는 선거구호로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웠다. 선거홍보 포스터는 ‘어린소녀에게 귀를 내밀고 무엇인가를 듣고 있는 노태우’였다. 친근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노태우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총칼로 수많은 국민들을 죽인 살인범이자 반란괴수였다. 그런 그가 보통사람이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었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선거참모들과 전략가들의 꾀에 넘어갔다. 이미지 조작의 효과였다. 거기다 김대중·김영삼 두 후보가 대립함으로써 민주세력의 표는 양분됐다. 대선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어부지리(漁父之利). 그렇게 해서 보통사람이 아니었던 노태우는 ‘특별한 보통사람’이 됐다. 그 뒤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킬과 하이드박사처럼 내면과 외면이 다른 인물들이 이미지조작과 대중의 착각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명박은 ‘현대성공신화’로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결국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가 성공한 기업가였으니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대선운동과정에서 돈과 땅에 집착하는 이명박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BBK, 도곡동 땅 의혹 관련 폭로가 이어졌으나 국민들은 눈과 귀를 닫았다. 지금에서야 그의 이중성을 DAS에서 보고 있다. 알몸으로 까발려지고 있는 이명박은 추하다.

박근혜 역시 실체보다는 이미지에 의해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로 급성장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은둔적 성격은 ‘냉철한 카리스마’로 둔갑됐다. 면도칼에 얼굴이 찢긴 와중에 무심코 던진 “대전은요?”질문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은 강인한 지도자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지금 생각하면 선거기획자들의 치밀한 연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근혜는 앵무새였고 뻐꾸기였다. 홀로 창공을 날아 오르는 독수리가 아니었다. 최순실이 시키는 대로 정부 인사를 하고, 주요정책을 발표하던 ‘최순실 아바타’였다. 2014년 신년 초에 갑자기 터져 나온 그녀의 ‘통일 대박론’은 ‘앵무새 박근혜’의 결정판이었다. 당시 북한은 ‘서울불바다’ 운운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 체제나 미·중·일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통일대박론이 불거져 나왔다. 상당히 생뚱했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은 최순실의 참언에서 비롯됐다. 어처구니 없게도 통일대박의 근거는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는 우주의 상서로운 기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또한 청와대라는 둥지에서 ‘최순실의 알’을 품고 있는 뻐꾸기였다. 국민들은 본인의 폐쇄적 성격과 청와대 십상시(十常侍)들의 의도적 차단으로 밤늦게 혼자 TV드라마를 보고 있는 그녀를 ‘국가와 결혼한 외로운 여인’으로 간주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국내 정치권의 이미지조작은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6월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자신을 ‘주민의 머슴’으로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실은 자신의 명예욕과 권력욕을 위한 것이면서도 ‘봉사’와 ‘헌신’을 거들먹거리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숱한 이미지 조작과 현실왜곡이 벌어졌다. 불과 1개월 전만 하더라도 북한은 한국을 겁박하며 전쟁불사를 외쳤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민의 안위는 안중에 없었고 미국의 국익만 바라봤다.

북한은 가장 위험한 집단 중의 하나다.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을 저질러 수많은 우리 국민과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금도 우리를 핵무기로 겁박하고 있다. 그런 북한정권이 ‘민족을 최우선’으로 해 평화통일 대열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북한정권의 궁극적 목표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통일과업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미녀응원단의 웃음과 율동에 빠져 북한정권의 호전성을 망각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대남적화전략을 간과한 채 ‘우리는 하나다’라는 감성적 일체감에 빠져 북한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실수다. 선언적이고 이미지 메이킹 차원의 위장평화공세를 경계해야 한다. 천안함 폭침의 주역, 김영철이 남북평화협상의 주역인 것처럼 허용케 한 것도 상당수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주역인지 확실치 않다’는 정부부처와 정보기관의 언급은 북한의 위장을 돕는 애드 립 역할을 했다.

이방카의 미모가 ‘어글리 트럼프’ 이미지를 순화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이미지에 속지 않아야 한다.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으로 많은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충격이 큰 것은, 겉으로 본 그들은 결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어서이다. 6월 선거, 남북대화와 관련해 많은 선택이 눈앞에 있다. 바라건대 속을 잘 들여다보고 결정했으면 싶다. 겉은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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