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작가의 만남

마을과 작가의 만남

<최유정 동화작가>
 

모처럼 마을 도서관에 갔다. 빌린 책도 반납하고 신간도 둘러 볼 생각이었다. 책 반납 후 서가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책장 너머 아는 얼굴이 보였다. 신아 엄마였다. 그녀가 달려와 내 등을 후려쳤다.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드냐며 내게 눈을 흘기는 그녀. 다짜고짜 손을 잡아끄는 그녀에게 이끌려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얻어맞은 등짝이 얼얼한데도 하소연 할 짬도 없이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이번 내게 준 임무는 마을에 있는 여자고등학교 창작 수업이었다. 글쓰기를 지향하는 학생들과 만나 진로 고민도 나누고 글쓰기 수업도 하라고 했다.

“최 작가, 마을은 학교야. 마을이 아이들을 잘 길러야 하다고. 알겠지?” 그녀 가라사대, 올 7월은 어디 짱 박힐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집필 계획이니 뭐니 이런 건 통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속수무책,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녀는 마을 공동체 활동가다. 그녀와의 만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발단은 마을 도서관이었다. 정치에 막 입문한 남편이 마을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나와 남편은 부지런히 마을 엄마들을 만나러 다녔다. 주로 학부모 독서회에서 활동하는 엄마들이었는데 그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나눠 먹으며 마을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도서관을 꿈꾸기 시작했다. 어른과 아이가 만나는 도서관. 장년의 삶과 청년의 삶이 녹아드는 도서관. 마을 도서관을 꿈꾸는 시간은 비엔나커피만큼이나 달콤했고 배도 불렀다. 물론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고민을 나누기 시작한 2년 후, 마침내 우리는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다. 마을의 힘으로, 마을 사람들이 만든 도서관이었다.

그 후 10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어떤 사람은 이사를 갔고 어떤 사람은 활동을 그만뒀다. 그녀는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몇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가 시키는 일이면 다해야 했다. 마을을 위해 하라는 일은 끽, 소리 말고 다 해야 했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그녀에 대한 마음의 빚은 마을에 관한 꿈을 함께 그린 죄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죄는 삶과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절대 면제나 닦음이 불가능한 죄였다. 죄의식이 커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는 미궁과도 같은 죄. 무한 책임과 사명의식으로 몸통이 점점 커져가는 이상한 죄. 행복을 만들어 가는 참으로 신비스런 죄인 것이다.

10년 전의 기억을 둔덕 삼아 다시 마을을 생각해 본다. 마을은 지역의 최소 단위다. 마을, 마을이 모여 지역이 되고 지역과 지역이 모여 나라가 된다. 내 생각엔 그렇다. 마을이 건강해야 지역이 건강해지고 지역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해 진다. 마을, 마을 사람들의 권한과 권리가 강해져야 선한 권한과 권력이 만들어진다. 내 생각엔 그렇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월 1일, ‘지방분권과 지역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국가균형발전 비전선포식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선언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촛불의 열망을 실현해 나가는 매우 중요한 선언이며 마을과 지역으로부터 선한권력을 만들어가겠다는 매우 중차대한 의지 표명인 것이다. 다시, 10년 전의 기억을 둔덕 삼아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디 마을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행복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마을과 함께 삶의 터전을 가꿔 나가는 사람, 마을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 항상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하며 어떤 어려움도 함께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마을의 머슴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적어도 마을을 알고 마을을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마을의 머슴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가 꼼짝 못하는 마을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마을의 머슴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을과 나라가 동시에 발전하는, 마을과 나라가 동시에 건강해지는, 촛불의 열망이 실현되는 2018년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신문에서 봤던 장면 하나가 생각난다. 프랑스 어느 작은 마을 이야기였는데 그 마을에 사는 작가의 일상을 스케치한 아주 짧은 글이었다. 그 작가는 일주일 중 하루, 마을 사람들과 마을 도서관에서 만난다. 작가는 시를 읽거나 소설을 읽는다. 마을 사람들은 작가의 낭독을 들으며 일주일 동안 분주했던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안식을 얻는다. 때론 이야기가 깊어져 마을에 관련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사회에 관련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작가가 이렇듯 마을, 마을 사람과 기꺼이 만나 “더불어”의 삶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그곳 지방자치가 시간과 장소, 비용을 작가에게 보장해주기 때문이었다. 작가인 나는 이런 마을을 원한다. 이런 지방자치, 지방분권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들을 간절히 원하다. 제발, 부디 마을을 알고 마을에 발 딛고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대거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10년 전, 마을 엄마들이 꿈꿨던 ‘마을’이 마침내 만들어지는 2018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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