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승과 이황의 사단칠정논쟁

기대승과 이황의 사단칠정논쟁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조선 유학사에 있어 최고의 논쟁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다. 사단은 성선설에 입각한 인간의 본성으로 <맹자>에 나오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초인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을 말하고, 칠정은 인간이 나면서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예기>에 나오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愛樂哀惡慾)을 말한다.

조선 성리학의 주된 관심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였는데, 이 논쟁을 퇴계 이황(1501∼1570)과 26살 연하인 고봉 기대승(1527∼1572)이 벌였다.

논쟁의 발단은 추만 정지운(1509∼1561)이 지은 <천명도설>이었다. 1553년에 퇴계는 추만이 “사단은 이에서 생기고 칠정은 기에서 생긴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한 것을 “사단은 이의 발함이요. 칠정은 기의 발함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고쳐 주었다. 이후 정지운은 이황이 감수한 <천명도설>을 발간했고 이 책은 선비들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1558년 10월, 과거에 갓 합격한 기대승은 서울에서 퇴계를 만나 그의 이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했다. 1559년 1월 퇴계는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비들 사이에서 그대가 논한 사단칠정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나의 생각에도 스스로 전에 한 말이 온당하지 못함을 병통으로 여겼습니다마는, 그대의 논박을 듣고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단이 발(發)하는 것은 순리이기 때문에 언제나 선하고 칠정이 발하는 것은 겸기(兼氣)이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고 고쳤는데, 이렇게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1559년 8월에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情)인데, 사단은 이(理)로 칠정은 기(氣)로 분리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편지를 퇴계에게 보낸다. 그의 이론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었다.

이에 퇴계는 사단 역시 정이라는 고봉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사단과 칠정은 근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단은 ‘본연지성’에 근원하고 칠정은 ‘기질지성’에 근원한다는 것이다.

이러자 고봉은 퇴계의 주장 하나하나를 12조목으로 나누어 소책자를 만들어 따진다.

1560년 11월 퇴계는 고봉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 자기가 잘 못 안 것, 자기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견해가 다른 것으로 분류한다. 그러면서 사단칠정을 ‘말을 타고 가는 사람’에 비유한다. 즉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탄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편다. 이에 고봉은 퇴계의 이론에 상당히 공감하면서도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대설(對說)이 아니라 인설(因說)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퇴계와 고봉은 1566년까지 8년간에 걸쳐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는데 사단과 칠정의 관계 설정에는 합의 없이 끝난다.

이어서 1572년에 성혼과 이이의 인심·도심 논쟁이 일어났다. 이기논쟁 2라운드였다. 퇴계를 지지한 우계 성혼과 고봉을 지지한 율곡 이이가 맞붙었다.

사실 16세기는 성리학 유토피아 시대였다. 서경덕, 이언적, 노수신과 이항, 김인후도 성리학논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성리학 논쟁은 이황과 이이의 논쟁으로 단순화되고 말았다. 이황의 주리파(영남학파, 남인)와 이이의 주기파(기호학파, 노론)이 300년간 당쟁을 한 결과였다.

심지어 1960년 대 후반에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황과 이이가 이기(理氣)논쟁을 하였다고 배웠다.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었다.

한편 1569년 3월 4일에 퇴계는 선조에게 허락을 받고 안동으로 돌아간다. 선조는 퇴계에게 학문에 조예 깊은 신하를 추천하라고 한다. 퇴계는 추천을 안 하다가 선조가 세 번까지 묻자 기대승을 통유(通儒)라고 추천한다. 이후 퇴계는 별세하기 20일 전인 1570년 11월 17일에 고봉에게 “삼가 어려운 시절에 더욱 몸을 아끼고 학문적 성취를 게을리 하지 말아 시대의 소망에 부응하기 바란다”는 편지를 보냈다. 13년간 주고받은 100여 통 편지의 대미(大尾)였다

안타깝게도 고봉도 1572년에 별세했고, 1589년 기축옥사와 1592년 임진왜란으로 호남 선비들이 많이 죽어 기대승의 학맥은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여 고봉의 학문이 폄하되거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최근 월봉서원 활성화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선비수련원도 만든다 한다. 이럴수록 ‘고봉학’ 공부와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이 일이야말로 서원 본연의 사업이고 2027년 ‘고봉 선생 탄생 500년’ 준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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