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40>-제3장 의주로 가는 길

길삼봉은 정충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지원군과도 같았다. 무슨 곡절인지 모르지만 그는 정충신의 뒤를 따르며 신변보호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리석은 일은 고만 하그라이. 사소한 의분이 사태를 그르친다는 것을 알아야 혀. 저 놈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니 어서 몸을 피해야 한다.”

그들은 두 왜병 사체를 주민이 묻힌 구덩이로 끌고가 쳐박고 흙으로 덮은 다음 집안에서 이불과 비상식을 수습해 초분골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여자는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입니다. 가족들이 그놈들에게 당했습니다.”

“알고 있다. 그자들은 와키자카 야스하루 병력의 일부다. 용인에서 조선 연합 육군 5만을 치고 남해상으로 내려가는 부대 중 군량미를 확보하는 놈들이야. 후방 병참선을 확보해 보급투쟁을 하는 놈들이지. 이놈들이 아주 악질적이다. 이 자들 대신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6군단이 이치전투를 마치고 또 북상 중에 있다. 이자들이 또 마을을 휩쓸 것이다. 얼마나 국토가 유린당할지 모른다.”

그는 왜병의 전황을 해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여자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정신 드십니까? 아짐씨도 노략질하는 놈들한티 당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묻지 마라. 빤한 거 아니냐. 한두 집이 아니다.”

길삼봉이 제지했다. 묻지 않아도 빤한 일, 공연히 상처만 덧내니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한 집에서 세 명씩이나…”

“도성은 물론이려니와 개성 평양 정주 곽산 영변 청북지역도 초토화되고 있다. 그곳까지 진격한 왜군 장졸들이 끼친 민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개와 돼지, 닭에게까지 화를 미치고 있다. 모든 남정네는 군마꾼으로 징발되고, 진지구축에 나서고 있다. 여자들은 능욕당하고 있단 말이다.”

“고을의 부윤이나 원님들은 뭘하고 있습니까. 자기 고장 하나 지키지 못하고…”

“다 도망갔다. 도망가지 않은 자는 더 악랄하다.”

“더 악랄하다고요?”

“그래. 그놈들도 이 난리통에 잇속 챙기지. 군비 충당한다고 백성들에게서 돈을 뜯고 있다. 왕실이 요구하는 진상 물자, 지방 관리들이 쓰고자 하는 물자를 돈으로든 현물로든 뜯어내고, 응하지 않으면 곤장으로 치도곤을 한다. 이 난리에도 말이다. 지방 관청에 납부할 공물을 거둬들이는데, 그나마 부과 기준도 달라서 원성이 자자하다. 난리를 이용해 관청들 좆꼴리는대로 나간단 말이다. 왜병에게 수탈당한 빈 곡간을 채우려고 저 개판이니 나라가 되겠냐.”

그러면서 그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너는 지금 떠나라. 내가 대신 아주머니를 돌볼 팅개. 나가 보살필 것이다.”

“성님은 도대체…”

“긴 이야기 필요없다. 네가 여기 있을 곳이 아니다. 어서 떠나거라. 대신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 가거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라. 먼먼 훗날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돌아보려면 꼭 두 눈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하느니라. 큰 일 하려면 현장을 직시해야 한다. 알아묵었냐?”

“저는 한양으로 갑니다요. 도성에 가서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나에 대해서 더이상은 묻들 말어라. 물으면 더 복잡해징개.”

“그럼 아짐씨 부탁하고 떠납니다이.”

그러자 여자가 불쑥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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