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믹스커피, 혹은 마카롱

초콜릿, 믹스커피, 혹은 마카롱

<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몇 년 전, 정치 입문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내 일터에 방문한 상대는 의기양양했다. 당연히 내가 수락할 것이라고 여기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정치 재능이라고는 요샛말로 1도 없는 사람이다.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전했다. 상대는 집요했다. 그래도 요지부동하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좋은 기회를 왜 놓치려하냐는 거다.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내 갈 길은 아니라고 선을 긋자 나를 참 특이한 사람 보듯 했다. ‘너는 왜 나처럼 하지 않니?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하는데 너 참 이상하다.’ 그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참 황당했던 기억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단면이다. 특히 이것은 유아의 인지적 특성이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엄마도 갖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아는 자기가 배고플 땐 엄마도 배고플 거라고 생각한다. 어른도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의 입장, 환경, 심정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공허하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소통의 진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에게 시키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잡곡밥을 좋아하니 상대에게도 건강에 좋은 잡곡밥을 먹게 하고, 내가 죽을 싫어하므로 상대에게 죽을 먹으라고 요청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를 배려했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내 중심이다. 상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고려하는 행동이 진짜 배려다.

86세 나의 어머니의 배려도 곱지 않게 보자면 문제가 많다. 어머니는 자꾸만 내게 당신의 옷을 입으라 하신다. 어머니의 옷은 죄다 꽃무늬다. “내가 젤로 애끼는 것인디, 너 갖다 입어라.” 애지중지하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저고리를 드밀면 거절하느라 여간 수고스러운 게 아니다. 내가 캐주얼한 의상을 입은 날이었다. 스니커즈 운동화에 목 없는 면양말을 신고 나타난 딸을 한심하게 쳐다보시더니, 살이 훤히 비치는 꽃무늬 목양말을 신겨 주셨다. “이것이 일제(日製)다잉! 느그 올케한테는 말허지 말어라잉?” 나름 최고의 선물을 딸에게만 베푸신 거다. 나는 그날 스니커즈 운동화에 어머니의 꽃 양말을 신은 채 다녀야했다.

어렸을 적, 나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손자가 밥상에서 깨작거리고 있으면 남기지 말고 먹으라며 허락도 없이 밥그릇에 물을 부어버리곤 했다. 말릴 새도 없이 자행된 할머니의 행동에 손자들은 거의 경기를 일으켰다. 내가 언제 물 말아 달라했느냐며 성질을 부리다가 아버지께 혼쭐났던 기억이 선연하다. 배불리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입맛 없을 땐 물 말아 먹으면 술술 잘 넘어가서 그런 것을…. 그것이 할머니 방식의 애정표현이었음을 어린 것들이 어찌 헤아렸겠는가?

나에게 초콜릿은 상비약 같은 기호식품이다. 진짜 효험이 있는 건지, 심리적인 요인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플라시보(Placebo effect) 효과인지, 초콜릿으로 기력이 충전됨을 느낀다. 네 시간 연강을 한 어느 날, 나의 동료가 내민 초콜릿 몇 알은 야간 수업 세 시간을 더할 수 있게 했다. 다음 날, 야근을 하는 그 동료 직원에게 이번에는 내 차례다 싶어 발품 팔아 초콜릿을 사와 건넸다. 하지만 거듭 고맙다던 말과는 달리 그의 책상에는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그대로 초콜릿이 놓여있었다. 나의 성의가 팽개쳐진 기분이었다. 그러다 며칠간 방치된 초콜릿을 노려보며 알게 된 사실, 그에게 충전식품은 초콜릿이 아니라 믹스커피였다. 평소에는 아메리칸 스타일인 그이지만 기력이 딸리면 습관처럼 믹스커피를 마신다는 것을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 직원이 과중한 업무로 피로해 하던 날, 나는 양손에 초콜릿과 믹스커피를 들고 자애로운 리더의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초콜릿 줄까? 아님 믹스커피?” 아뿔싸! 저쪽에서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저는 마카롱이요!” 이 날, 나는 아예 전 직원의 기호식품을 조사, 목록을 작성해 공유했다. 서로를 배려하느라 좋아하는 메뉴를 드러내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다.

가장, 사장, 회장 등등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리더라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미투(Me too)운동도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권력자의 폭력성에 항거하며 일어난 거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소통은 어렵지 않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알아차려 하지 않으면 된다. 또 상대가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믹스커피를 좋아하는지, 혹은 마카롱인지 관심을 가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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