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일 이틀간 30여명 문화기획자 팸투어 동행

■남도의 스토리를 찾아서
섬·역사·소리에 홀딱 빠지다
23~24일 이틀간 30여명 문화기획자 팸투어 동행
전남정보문화진흥원, 문화콘텐츠 발굴 위해 기획
해남 녹우당·완도 생일도·강진 다산초당 등 답사
 

‘남도에 홀딱 빠지다’ 프로그램 일환인 ‘전문가와 함께하는 1박2일 팸투어’참가자들이 24일 백련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라남도가 가진 문화자원은 실로 무궁무진합니다. 차창 밖에 펼쳐진 붉은 황토색 땅은 단언컨대 남도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색채입니다. 영산강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옹관을 비롯해 남도의 애환이 서린 판소리 역시 남도가 가진 독특한 색깔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만큼 보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남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가치를 느끼고 훌륭한 문화콘텐츠로 재생산되길 기대합니다”

지난 23일 오전 광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 안, 새록새록 피어나는 봄의 기운과 질감이 느껴지는 적토색 밭까지…. 시선을 사로잡는 남도의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지자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이사의 맛깔스런 ‘남도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행 작가·프로듀서·VR 제작자·콘텐츠 기획자 등 30여명은 ‘전문가와 함께하는 1박2일 팸투어’에 나섰다.

이 행사는 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남도의 문화와 설화, 관광 자원 등 유ㆍ무형 자원을 상품화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남도에 홀딱 빠지다’ 프로그램 일환이다.

‘남도에 홀딱 빠지다’ 는 지난 달 참가자를 대상으로 문화콘텐츠와 지역 스토리텔링 사례 등 이론수업에 이어 이번 달에는 자연, 판소리, 섬 등 다양한 주제에 맞게 구성한 세 차례 ‘팸 투어’를 통해 콘텐츠 제작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섬에 빠지다’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팸 투어는 해남과 완도, 강진을 1박 2일로 방문하며 다양한 남도 스토리를 엿볼 수 있는 세 차례 답사 중 마지막 시간이었다.
 

고산 윤선도유물전시관에 들어서는 참가자들

▶해남 윤씨 종택·조선시대 문화 사랑방 ‘녹우당’

투어 첫 목적지는 해남 윤씨의 600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덕음산 아래 자리한 해남 녹우당이었다. 해남 윤씨의 종택인 녹우당은 조선시대 내로라 하는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문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곳으로 주목받는다.

이 곳에서는 김광수 해남군 문화관광해설사가 나서 녹우당의 내력과 이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녹우당은 해남 윤씨 집안인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를 비롯해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석학들이 이 곳과 대흥사를 무대로 학문과 예술활동을 활발하게 펼친 곳으로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은 녹우당에 와서 공재의 그림을 보며 그림을 익히기 시작했고, 대흥사에 기거했던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외가가 해남 윤씨인 다산 정약용은 전남으로 유배 온 뒤 녹우당에서 책을 10수레 가량 빌려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다산이 머물렀던 다산초당은 해남 윤씨 집안에서 내어준 공간으로 사실상 과거시험에 도전하기 위한 윤씨 집안 자제들의 고시촌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평소 알지 못한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며 유물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에서는 윤두서의 명작 ‘자화상’(국보 제240호) , ‘나물 캐는 여인’을 비롯해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고산 양자 예조입안문서(보물 제 482-5호) 등 귀중한 자료들을 엿볼 수 있었다.
 

원교의 현판이 걸린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당대 라이벌 추사·원교, 대흥사와 얽힌 사연

참가자들은 녹우당과 인접한 대흥사로 곧이어 발걸음을 옮겼다.

대흥사에서는 당대 제일로 꼽히는 조선시대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와 그의 라이벌인 원교 이광사의 현판 글씨를 나란히 볼 수 있었다.

특히 문화해설사를 자청한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대웅보전에 걸려있는 원교의 편액이 추사의 호통에 떼어졌다가 수 년 뒤 다시 내걸린 사연을 소개해 흥미를 자아냈다.

사연은 이렇다. 1839년 제주도 유배 길에 올랐던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오랜 지기였던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해남 대흥사를 들렸다 원교가 쓴 현판글씨를 보게 되고 초의선사에게 원교의 글씨를 비판하며 현판을 떼어낼 것을 요구한다.

수 년이 흐른 뒤 제주도에서 추사체를 완성한 추사는 유배길에서 풀려나 다시 대흥사를 찾아 초의선사에게 원교의 글씨를 다시 달아줄 것을 요청한다. 거만했던 추사가 유배 기간 동안 각 글씨체가 가진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다. 원교의 편액이 걸린 대웅보전 좌측에 내걸린 현판 ‘무량수각’은 추사의 글씨로 대흥사에서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추사와 원교의 글씨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다도문화를 정립한 초의 선사가 기거한 일지암을 방문한 건 또다른 덤이었다.
 

대형 생일케이크 모형이 우뚝 선 생일도에 도착하자 투어 참가자들이 완농페리호에서 내릴 채비를 하며 기대감에 들떠 있다.

▶생일도에서 함께한 5人 5色 멘토링

유서 깊은 사찰을 떠나 참가자들이 향한 곳은 푸르른 바다가 펼쳐진 청정해역 완도였다. 당목항에서 배를 탄 뒤 30분이 지나자 이르른 곳은 랜드마크처럼 우뚝 선 대형 생일케이크 모형이 관광객들을 반기는 ‘생일도’.

전남 ‘가고싶은 섬’ 중 하나인 생일도에서는 웹툰, 영화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5명의 전문가와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토론이 시작됐다.

이날 멘토로는 김정태 한국웹툰협회 이사, 유희정 써니엔터테인먼트 대표, 공성술 만화가, 이창현 필벅 대표, 김순규 목포 MBC PD 등이 참여해 문화기획자로 살아온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주가 고향인 공 만화가는 서울에서 활동하다 지역사회 발전과 후배를 위해 만화를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6년 전 광주로 내려온 사연을 소개하며 잔잔한 감동을 줬다. 특히 남도를 스토리텔링해 그린 5·18 소재 웹툰 ‘메이피플’ , 광주 YMCA 창시자인 최흥종의 일대기를 그린 ‘오방 최흥종 선생’, 일제시대 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소녀의 아픔을 담은 ‘두 소녀의 봄’ 등을 언급하며 남도 스토리에 대한 가능성을 심어줬다.

수 십년간 영화와 방송, 광고와 애니메이션 등을 오가며 다양하게 활동하다 현재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희정 써니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경험담을 곁들여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유 대표는 “광주·전남 등 지방에서 일을 해봤는데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어 스토리 개발에 경쟁력이 있다”며 “남도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일 뿐이다. 스토리가 떠오른다면 바로 콘텐츠화를 시도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0년 신드롬을 일으킨 캐릭터인 ‘마시마로’ 를 런칭해 토종캐릭터의 마이더스로 불리는 이창현 필벅 대표는 문화콘텐츠 기획자로 성공을 꿈꾸는 참가자들에게 현실적 조언을 내놨다. 이 대표는 “정부 지원사업이 많지만 잘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며 “좋은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맞춤형 사업에 도전해 봐야 하고 이번 진흥원 사업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태 한국웹툰협회 이사는 만화 도시로 거듭난 부천의 웹툰 생태계 조성을 소개하며 문화콘텐츠의 산업화에 있어 지자체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이사는 “만화 도시로 자리잡은 부천은 1998년 부천만화지원센터 건립을 시작으로 꾸준히 만화 분야에 투자해 현재 정부지원까지 합쳐 1년에 100억원에 이르는 콘텐츠 제작 지원을 하고 있다”며 “만화가들의 터전이 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이 되기까지 지자체의 관심이 큰 힘이 됐듯이 남도 이야기가 문화콘텐츠화 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지속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남도의 다양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김순규 목포 MBC 보도제작국 부장도 자신이 만든 다큐 등을 언급하며 “일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황연수 명창이 투어 참가자들 앞에서 ‘사랑가’를 들려주고 있다.

▶남도 소리, 그리고 ‘정약용’과 ‘18’의 상관관계

투어 이틀째를 맞이한 참가자들은 오전 무렵 생일도를 벗어나 강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이들이 만들어낼 영화나 웹툰, 여행 답사기의 주요 장소가 될 지도 모르는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그림같은 푸른 바닷길을 바라본 뒤 향한 곳은 인근에 위치한 황연수 명창의 집이었다.

지난 2010년 제18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한 황 명창은 참가자들을 안방으로 안내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자 황 명창은 남도의 소리에 대해 설명하며 흥보가 중 한 대목을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다. 춘향가 눈 대목인 ‘사랑가’를 구성지게 들려주자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얼쑤’, ‘좋구나’ 추임새가 터져나왔다.

짧지만 강렬한 판소리와의 만남을 뒤로 한 채 고려 후기 불교 정화 운동의 한 축인 백련결사의 진원지인 백련사를 거쳐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이 유배시절 기거했던 다산초당으로 이동했다.

다산초당 가는 길에서는 보일 듯 말듯 아스라이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흑산도가 수평선 너머 걸쳐 있는 듯 했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존경했던 두 형제가 수 없이 쳐다봤을 망망대해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윽고 도착한 다산초당에서는 조 대표가 다산 4경인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에 대해 설명했고 해남 윤씨의 고시촌이었던 다산초당이 왜 다산의 마지막 유배지가 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재미있는 스토리로 들려줬다.

특히 ‘정약용과 18이라는 숫자와의 상관관계’는 큰 관심을 끌었다. 다산을 아꼈던 정조가 1800년에 사망한 뒤 그는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키운 제자는 18명, 유배에서 풀려난 시기는 1818년,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오고 18년 뒤인 1836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2018년 듣게 된 정약용과 ‘18’의 상관관계는 왠지 투어 참가자들이 다산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성공적인 문화콘텐츠로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주게 했다.
 

다산초당

▶참가자 반응도 ‘굿’…전남 문화콘텐츠 성공 ‘기대’

이날 참가자들은 팸투어를 통해 남도의 스토리를 문화콘텐츠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엿봤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변지섭 VR콘텐츠 제작자는 “VR의 특성상 전체 풍경을 담는다. 타 지역에서 살다보니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미처 몰랐는데 대흥사 사찰을 가보니 야자수 사이에 물이 흐르는 모습 등이 인상 깊었다”며 “제 분야를 살려 다른 참가자들과 협업해 좋은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다섯 멘토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송남순 여행작가는 “다섯 멘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기존 알고 느꼈던 부분보다 더 큰 그림을 본 느낌이어 너무 좋았다”며 “웹툰 등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듣게 되면서 무궁무진한 문화콘텐츠 세계를 접하게 됐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팸투어를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오는 30일 나주 실감미디어산업지원센터에서 워크숍을 통해 각자, 또는 팀으로 준비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오는 4월 6일에 문화 상품화할 수 있는 기획서를 제출, 발표함으로써 작품 선정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된다.

전남정보문화진흥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선정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 전남 문화콘텐츠 상품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병욱 전남정보문화진흥원 단장은 “남도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 콘텐츠화 시킬 만한 자원이 많지만 실질적인 마케팅이 부족해 상품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전남의 다양한 유ㆍ무형 자원을 특강과 이론, 답사를 통해 배우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해 성공적 문화콘텐츠가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남도에 홀딱 빠지다’는 문체부의 2017 지역거점형 콘텐츠기업육성센터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콘텐츠 스타트업 소양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번 사업에는 국비 48억 원을 비롯해 총 226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기간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다.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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