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54>-제4장 이치전투

“조센징을 포섭해 첩자로 활용하는데 잘 먹힌다는군. 대구 인근에서의 일이야. 첩자 중에는 병사, 관리들도 포함돼 있었다는 거야. 마을에서 소 한 마리를 잡아먹은 김순량이란 자를 관아에서 잡아서 국문했는데, 그자가 중요한 기밀 문서를 우리 장수에게 제공한 대가로 소를 포상금으로 받았다는 거야. 이때 김순량이 불기를, 그런 첩자가 자기 혼자만이 아니며, 마흔 명이 훨씬 넘으며, 고을마다 첩자가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다는 거야. 일이 나면 우리 장수에게 먼저 보고된다는 거야. 이자들이 우리 장수로부터 받은 포상금을 관아에 또 뇌물로 제공하니 모두 구제되더라는 거야.”(매일경제 배한철의 ‘임진왜란 시 조선 장수는 겁쟁이에 무능력자였다’중 일부 인용).

“정말 그런 자들 때문에 우린 땅짚고 헤엄치기로 조선땅을 먹었구만. 그런 놈들이 어떻게 지도자라고 있는 거야?”

“우린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때는 존경하며 주눅들어 살았잖아.”

“그게 기분나쁘다는 거지. 왕이란 자 말이야. 본래 이름은 균(鈞)이었으나 내내 운이 안좋게 들어서 연(?)으로 바꾸었다는 그 왕이 줄행랑을 놓는 것이 세계신기록감이라고 하더군. 도둑 도망가는 것은 저리 가라였다는 거야. 빗속을 뚫고 내달리는 꼴이 볼만한 장면이었다는 거구만. 그걸 우리가 생포해서 상투 자르고, 부랄 잡고 한번 흔들어주는 건데 우리가 좀 늦었지?”

“우리가 늦은 게 아니라 그자가 빨랐지.”

“그만 야지 놓아. 그래도 임금인데, 예는 차려야지”

“예? 그 예 차리다 망한 나라에 예는 무슨 예? 백성들도 그런 예는 쌀 한됫박 값도 못된다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모두 불태워버렸지. 분개해서 달려들어서 태워버리잖아. 이런 상놈의 나라는 나에게 필요없다고 태워버리잖아. 백성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상놈의 나라에 예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기를 들잖아. 양반, 상놈 찾지만 그자들이 더 상놈 짓을 한다고 말이야. 우리도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이 있지만 이건 아니잖아?”

“자, 그만하고. 우리가 의주가 아니라 전라도로 내려온 것을 생각해. 지휘부의 뜻을 생각해봐”

“이곳도 빤한 곳 아니겠나. 그러니 낮잠이나 실컷 자자구. 한 주먹감도 안될 텐데…”

“그렇게 볼 것은 아니야. 이곳은 만만치 않아. 그러니 여지껏 공략이 안되었던 것이야.”

“모두 일어섰!”

나오지의 명령에 병사들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산성과 이치령 골짜기를 행군할 적에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들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우리가 호남 진격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나?”

나오지 막료장이 걸음이 느린 병졸을 향해 소리쳤다.

“양곡을 차지해야지요.”

“그래. 그래서 이곳으로 이동한 거야. 차지하려면 빠릇빠릇해야지.”

왜의 병력은 후방 병참선이 뒤따르지 못해 어려움이 컸다. 전쟁은 지구전으로 바뀌는데 장기전에 대비해 병사들 먹일 군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위한 병참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동안 본토에서 군량을 지속적으로 운송해 왔지만, 바다를 지키고 있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어려운데다 뱃길이 험하고, 부산포에 군량을 하역했다 하더라도 다시 육로 이천 리를 옮겨야 했으니 힘겨운 일이었다. 주공(主攻)전선이 조선 관군이 아니라 현지 군량 확보가 되는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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