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59>-제5장 정충신의 지략

장수들은 한결같이 놀라는 눈빛이었다. 아직 새파란 떠거머리 총각인데, 장수 모임에 나섰다는 것이 좀 의아스러웠던 것이다. 정충신이 이를 의식하고 정중히 예를 취한 뒤 보고했다.

“고경명 장군께 다녀왔습니다. 김보원 장군께서 말씀하신대로 그곳은 진영이 잘 짜여졌습니다. 황박 의병장이 맡은 1군은 웅치 아래에 진을 치고, 이복남 장군의 2군은 중간 계곡, 정담 변응정 장군의 관군은 정상에 매복했습니다. 고경명 장군께옵서는 왜군 사단 병력 뒤쪽에서 가두리 대형으로 왜군 병력을 가둬놓는 진용을 갖추었습니다. 웅치 전대는 사천, 진주, 함양 방향에서 올라오는 안코쿠지 에케이 군단을 맞아 싸울 것입니다. 대신 우리 군대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6군단 주력과 부딪칠 것입니다. 이들은 왜의 출정병력 중 최정예부대입니다. 안코쿠지 에케이 부대가 먼저 웅치를 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우리 부대는 그 여력의 시간을 아껴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 기간은 닷새입니다.”

“지휘부의 전법 전수가 필요합니다. 총체적인 상황판단 하에 전술지침을 내려주기 바랍니다.”

김보원 의병장이었다. “그 말 잘했소. 정충신은 광주목사관의 지인으로서 이치전의 내 연락병이자 전선의 동태를 파악하는 상황병이고, 적정을 탐색하는 척후사령이오. 내 조카 권승경은 부전장이오. 장수들은 이 두 사람과 긴밀히 연락하게 될 것이오. 지리적 여건상 이치전은 철두철무 유격전이고 위장전이니, 상황병과 연락병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그렇지요. 횡선 종선의 체계가 원활하게 연결되어야 작전을 펴는 데 용이하지요.”

“그래서 두 사람이 내 참모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오. 금방 들어온 김보원 대장에게 임무를 부여하겠소. 김 대장은 주장(主將)을 보좌하는 종사관 겸 최일선 전투대장으로 임명하오. 김보원 장수에 대해선 내 일찍이 명망을 들어 알고 있소. 학문과 도학을 깊게 연마함은 물론이고 천문·지리·병법이 정통하다고 들었소. 성품 또한 강직하니 위대기 장수와 함께 적의 최전방을 맡아주시오.”

김보원은 장성군 삼서면의 낭월산에서 손자병법과 제갈량의 팔진도법을 익히며 무술을 다져온 유생이었다. 제봉 고경명, 건제 김천일, 수은 강항, 심우신과도 의기가 투합했으니 난을 극복할 숨은 영웅이었다. 그래서 권율은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그를 적의 최전방에서 적병들의 기세를 꺾어줄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웅치 쪽이 불안한 것 같소. 거기서 시간을 좀더 버텨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우리가 고바야카와 적병들을 부술 수 있을텐데…”

“그곳으로 응원부대를 파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장수가 물었다.

정충신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들의 힘을 분산시키려면 진영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저들은 2만 군사인데 우리는 1천600입니다.”

“2만에 1천600이라?”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정충신은 의연하면서도 정중히 말했다.

“물론 절대열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리한 것은 저들보다 이곳 지형을 잘 안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은 우리 땅이니까요. 지형상 평지전이 아니니 해볼만 합니다. 평지전엔 보병이 우세하지만 유격전과 복병전은 누가 우세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위장전과 둔갑술을 펴면 금상첨화지요.”

장수들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들 끄덕였으나 한 장수가 물었다.

“병략을 그렇게 쉽게 발설할 수 있는가. 이 안에 어떤 무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우려 섞인 말이었으나 떠꺼머리 총각을 얕잡아보는 말투였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