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필요한 규제 완화, 재앙의 시발점

사회적으로 필요한 규제 완화, 재앙의 시발점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규제는 간섭이다. 간섭받으면 불편하다. 규제 준수는 비용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공적으로 간섭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이뤄질까? 물론 지나친 규제, 부당한 간섭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규제는 규제 대상자가 포획하고자 하는 대상물이다. 규제자와 규제 대상자가 행위자로 참여하는 규제시장이 형성된다. 규제시장이 잘못 작동하여 나타난 현상이 부정부패이다.

엊그제 저녁 후배와 함께 맥줏집에 갔다. 후배는 맥주를, 나는 음료수를 마셨다. 그 집에서 나오면 바로 운전해야 하기에 그랬다. 후배도 승용차를 가져왔기에 운전해야 한다. 그는 맥주잔을 잡는 순간 말했다. “형! 걱정하지 마세요. 대리운전 불러 가겠습니다.” 그의 집은 그 장소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많이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그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은 사람처럼 멀쩡했다. 맥줏집에서 나오자마자 대리운전을 불렀다. 그런 강단(剛斷)이 보기 좋다. 늘 만나고 싶은 후배다.

‘제1항에 따라 운전이 금지되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은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5퍼센트 이상인 경우로 한다.’ 오늘 현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4항이다. 한편 올해 1월 24일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는 교통 약자·보행자 안전대책에서 현행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0.03%로 강화하고, 상습 음주 운전자에게는 차량 시동을 걸기 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해 음주 사실이 감지되면 시동을 제한하는 음주운전 방지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03%는 소주 한두 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라고 한다.

음주운전 단속 강화를 목적으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서 음주운전 단속 기준 혈중알코올농도 0.03%가 시행되기 전임에도 예전보다 모임에서 술잔 들기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화제가 다양해지고 조용하게 더 대화에 집중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음주문화의 합리화, 대화 태도의 개선, 조용한 모임의 확산 등을 본다.

어떤 국외 주류회사가 주류 판매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차원에서 음주운전 단속 기준 혈중알코올농도를 현행 0.05% 이상에서 0.1%이상으로 올리라고 하여 어떤 정부가 시행한다면, 건전한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를 사회적으로 용납할 리 만무하지만, 어떻게 될까? 음주 교통사고 빈발은 물론이고 음주문화는 건강유지비용 상승을 초래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방향으로 바뀔 거다. 거칠게 말하면, 음주단속 규제완화의 재앙이다.

‘폐기물 감량 정책, MB정부가 후퇴시켰다.’ 지난 4일 어느 신문의 1면 기사 제목이다. 중국의 수입금지 조처에 따라 폐기물 처리 문제, 즉 비닐 쓰레기 대란이 사회적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 이후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는 감량화 정책의 후퇴가 똬리를 틀었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패스트푸드 업체와 커피전문점 등에서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 대신 보증금(50~100원)을 받았다가 컵을 되가져오면 돌려주는 컵 보증금 제도는 2008년 없어졌다. 컵 회수율은 제도 시행 초기인 2003년 10%대에서 2008년 37%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통한 일회용 컵 사용 규제는 컵을 사용하는 생활방식을 바꿔왔다. 컵 사용 방식의 개선은 인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폐기물 감량에 기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구 생태계 보전에 필요한 폐기물 감량과 같은 환경규제를 일부 이익집단의 경기 활성화를 명목으로 장기간 완화한다면, 이는 환경재앙으로 귀결될 거다. 그 시발점이 이번 비닐 쓰레기 대란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위에서 든 규제뿐만 아니라 노동부문의 산업안전보건규제, 노동시간 규제 등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규제’(socially necessary regulation)이다. 이러한 규제의 완화는 회복 불가능한 노동력 파괴라는 재앙으로 이어지는 실마리로 이해된다.

규제가 능사는 아니지만, 컵 보증금제도와 같은 유인책(incentives)을 활용한 규제의 강화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이번 비닐 쓰레기 대란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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