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62>-제5장 정충신의 지략

정충신이 한 산골마을에 이르자 산 귀퉁이에 옹기 굽는 집과 제법 규모를 갖춘 대장간이 나타났다. 옹기 굽는 집은 기다란 봉분 같은 흙집 한 끝에 연통이 솟아있는데 가느다랗게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굽는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는 중인 것 같았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간은 시커먼 벽에 낫과 쇠스랑, 호미가 줄줄이 걸려있고, 그 한켠에 장군칼, 청룡도, 언월도, 창검, 쇠도끼 수십 개가 세워져 있었다. 풀무 앞에서 대장장이가 삼지창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삼지창의 형태가 낯설었다. 긴 손잡이 끝에 창 모양의 날이 세 개 붙어있긴 한데 가운데 것이 유독 뾰족했다.

“이게 무슨 창이요”

대장장이는 대답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정충신이 이상하게 여기고 대장장이를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돌자 쇠를 두둘기던 그가 눈으로 정충신의 동작을 따르더니 버럭 화를 냈다.

“뭔 느자구여? 뭣 땀시 그러는겨?”

“왜놈 병기 만드는 것 아니요?”

“왜놈 병기 만들면 어떻고, 안만들면 어뗘?”

“왜놈 병기 만들면 좋들 않지요.”

“어허, 나가 뭘 만드는 것 가지고 게찌 붙는 느자구가 다 있구마이. 내용도 모르고 내랙없이 따지고 말이여.”

어이가 없다는 투다.

“그러니까 왜 고걸 만드냐고요?”

“나가 만들건 말건 뭔 시비여? 쓸만항개 만들제 내빌라고 만들겠는가. 요 삼지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번 꽂히면 어떤 인간도 살아나들 못혀. 산다고 한들 병신돼버린당개. 팍 찔러가지고 한번 홰도리치면 살이 한 주먹 도려지고, 배 창시가 다 빠져나와붕개.”

“왜놈 무기 만들면 역적이요.”

그러자 그가 정충신을 쏘아보았다.

“맬겁시 대들면 몸이 상하니께 조심혀. 왜놈 것 만든 것이 기분 나쁘면 보들 말고 가. 꼭 무슨 염병짓할라고 기웃거리는 간나구 같구마이.”

그는 왜병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듯 뻐기면서 거만하게 소리쳤다. 텁수룩한 털이 얼굴을 거의 덮고 있어서 흡사 산짐승 같았다. 나이로는 삼십 가까이 되어보였다.

“누가 간나구 짓이요? 성님이 그런 짓 하는 거 아니요? 그리고 초면인 사람한티 함부로 말하면 안되지요.”

“자네가 심문관처럼 따져 물응개 나가 기분이 족같당개.”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점잖치 못하게 함부로 욕하면 돼요? 그것은 안되는 일이제!”

정충신이 정색으로 따지자 그가 거기까진 예상치 못했던지 대번에 뜨악해지더니 꼬리를 내렸다. 정충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자네한티 욕한 것이 아녀. 누구한티라도 욕을 퍼붓고 싶었당개. 하필이면 이때 자네가 왔싱개 욕을 거저 먹은 거여. 요즘 내 심정이 말이 아니여. 누구를 봐도 좆탱이를 날려버리고 싶당개.”

“그래도 나한티 욕한 소리로 들리는고만.”

“아니랑개. 이런 세상, 엎어버려야 항개 하는 소리랑개. 그러니 나가 누구것 만들어줘도 시비붙들 말어. 왜놈것 만들어줘도 나는 암시랑도 안항개.”

“성님이 암시랑 안해도 내가 암시랑 하요. 왜놈 무기 만들어주면 고걸로 우리 백성들 다 죽일 텐디 암시랑하겠소?”

“자네 마음이 안편하다고? 별 애국자연 하는 느자구가 다 있구마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내 얘기 좀 들어보쇼.”

정충신이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내 성질 꼴리는대로 살랑개 시비 붙들 말어. 잘못하면 여기 쇠창이 날아가붕개 조심하고. 나 성질 나면 상당히 무섭다마시. 상대방이 누구라도 뽀사부링개. 고냥 아작나부러. 쇠를 두둘기면서 화를 끄고 사는 사람한티 잘못 얼쩡거리면 면상이 죽탱이가 돼분당개. 그러니 누구 무기 만든다고 시비붙들 말고 어서 가던 길이나 가.”

“안되지요.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갈 수가 없지요. 고것은 잘못된 일잉개요. 그러니 성님하고 이야기 쪼깐 해얄랑개비요. 보아하니 성님 속이 안좋은 것 같은디, 내가 조금은 그 속을 알 것 같소. 난세에 불만 품는 것은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잉개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하는 것잉마요. 나가 이해하요.”

그러자 그가 한 성질 누그러지는지 다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청년이 통하는 구석이 있고만. 그래, 하고 잡은 얘기가 무엇이여?”

정충신이 그의 소매를 잡아 연기에 잔뜩 그슬린 어두컴컴한 옆 봉당으로 이끌었다. 은밀하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얼결에 주춤주춤 그가 따라 들어왔다. 정충신이 주인이고, 대장장이가 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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