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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제5장 정충신의 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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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정충신 장군<63>-제5장 정충신의 지략

“성님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으면 이 난리통에도 세상 엎어지라고 염불외듯 하겠소. 통성명이나 합시다.”

생각이 단순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나는 박대출이란 자여. 나가 애초에는 대장장이로 굴러먹은 자가 아니여. 천민이 아니랑개. 상놈의 종자가 아니여. 박 대장이라고 불러도 써.”

“알겠습니다. 나는 정충신입니다. 광주 목사관에서 왔습니다. 난리가 났는디 가만 있을 수가 없었지요. 녹봉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하인이나 다름없소. 그렇더라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니 일어나야지요.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으면 인간의 귀천이 따로 없고, 노소 구분이 없승개요.”

“충신 났네이.”

“그러니까 내 이름이 충신이요.”

그러자 박대출이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얼굴이 시커매서 이가 더 하얗게 보였다.

“이름까정 충신이라고? 환장해불겄네.”

“성님은 의병 나가셨던개비지요? 대장이란 말이 거저 나온 말이 아닝개요. 장난치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게 자칭 대장이라고는 안하지라우.”

“나도 한 시절 쪼까 나가던 사람이었어. 선죽도에서 왜놈 다섯을 한 칼로 베어서 그 새끼들 배창시를 모다 뽑아버린 사람이여.”

“선죽도요?”

“그려. 왜놈 새끼들이 쳐들어와서 난리칭개 우리가 정 장군 모시고 가서 싹 쓸어버렸제. 그놈들 좆빠지게 도망가는 것 봉개 나 맘이 냉수마신 것 맹키로 시원하더라고. 그란디 3년만에 또 그 느자구들이 쳐들어와서 삼천리 강토를 밟아버리구마이. 하지만 나는 시원하네. 내 대신 복수해주는 것 같아서 부글부글 끓던 속이 개운하단 말이여.”

“그게 무슨 말이요?”

왜 군사가 쳐들어와서 삼천리 강토를 쓸어버리는 것이 시원하다고? 심뽀가 뒤틀려도 크게 뒤틀렸거나, 피치 못할 곡절이 있다는 것을 정충신은 알았다. 그래서 물었다.

“그렇다고 홧김에 서방질할 수는 없지요. 무슨 일이 있었소?”

“말을 하자면 한이 맺혀서 다 하들 못혀. 자네 기축년 난리 아는가?”

“조금은 알지요. 사람들이 무자게 다쳤담서요?”

“무자게 다친 정도가 아녀. 쓸만한 사람들을 무작스럽게 쓸어부렀제. 그 훤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다 가버렸당개. 대신 허접쓰레기들만 남으니 나라가 이 꼴 아닌가. 하늘이 노할 만도 하제. 그래서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국토를 아작내버린겨. 그런데 고것이 나한티는 콩볶아 먹는 것처럼 고소하고 개운하더란 말이시. 고놈들이 우리를 개잡듯이 쪼사버리니 왜란이 오든, 호란이 오든 무슨 상관이여? 스승님도 가버리고, 계원들 수십 명이 떼죽음당하고, 어르신들 줄줄이 참수당했는디 무슨 염병 났다고 나가 나서겠는가.”

“하지만 성님, 그것은 잘못 생각했소. 이런 때일수록 생각을 곧게 잡아야 합니다. 공을 세워야지요. 임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요. 저 백성들 왜놈들에게 당한 것 보시오. 곡식 빼앗고, 집에 불을 놓고, 노인들까지 잡아가서 노역시키고, 젊은 장정은 대들갑시 미리 목을 자르고, 여자들은 겁탈하고 있소. 마을에 들어가보면 당장 알 것이요. 어제도 왜 군졸에게 겁탈당한 여자가 소나무에 목을 매 죽은 것을 보았소. 그런 것 보면 눈이 안뒤집히요? 그런디도 시원하다고요? 오장육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안되는 일이지요. 늙은 어르신들도 분통 터지는디, 젊은 사람이 혈기가 없다면 말이 되겠소? 이런 때 성님같은 분들이 나서야지요. 백성들 눈물이 안보이요? 성님 같은 정의파가 나서면 백성들이 정말로 눈물로 고마워할 것이요. 그럴 때 누가 성님같은 우국지사를 내버려둘랍디여. 조정에서도 공을 인정해서 예전 일은 불문에 붙일 것이요.”

“나가 잘못이 없는디 누가 불문에 붙인다는 것이여? 그자들이 나쁜 놈들이제, 좋은 세상 만들어보자는 것이 우리가 개창나부렀을 뿐이여.”

“어쨌든 이때를 기회삼아서 일어나야 합니다. 뿔뿔이 흩어진 동무들을 규합해야지요. 동무들 다시 만나면 좋은 세상 만들 수 있승개요. 다시 도모할 수 있잖습니까?”

“그러면 호다. 나는 길삼봉 성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우리는 야망이 있는 사람들잉개.”“그분이 누군지는 모르겄지만 꼭 만나게 될 것잉마요. 뜻을 세우면 길이 있고, 길이 있으면 사람을 찾게 될 것잉개요.”

“옳은 말이네.”

금방 그가 동의했다. 역시 단순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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