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최혁 남도일보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

‘내로남불’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김기식 신임금융감독원장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피감기관의 돈으로 여성비서와 함께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누가 봐도 적절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현장조사를 위한 의원외교’라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소신과 원칙에 따라 관련기관의 오해를 살만한 혜택을 주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김 원장을 감싸고돌고 있다. 내로남불의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식 신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 시절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던 인물이다. 올바른 금융질서와 공정함을 강조하며 금융계 인사들을 질타했다. ‘기업 돈을 받아 출장 가는 것’을 ‘명백한 로비’라고 규정하면서 호통을 쳤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3차례나 외유를 다녀왔다. 금융계 인사들은 ‘접대’ 받은 것이고, 자신은 ‘나랏일’을 했다는 것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유분수다. 어찌 감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 가관은 청와대의 해명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출장 건은 모두 관련기관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한 의원 외교차원에서 이뤄진 것이거나 관련 기관의 예산이 적절하게 쓰였는지 현장조사를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국민 눈높이에 부합되지 않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는 뜻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우리는 음주운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겸손과 국민여론 최우선주의는 찾아볼 길이 없다. 국민감정에는 분명히 맞지 않으나 최종 판단은 청와대가 하겠다는 오만함이 가득하다. 어디 그래서야,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가능하겠는가? 저쪽 식구들이 저지른 잘못들은 온갖 법의 잣대를 다 들이대 엄히 처벌하고, 이쪽 식구들이 저지른 일들은 그럴 수 있으니 넘어가겠다는 어영부영은 국민갈등만 깊게 할 뿐이다. 눙치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인물은 낙마시키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말도 안 되는 온갖 음모론을 내세우며 ‘정치보복’ 운운하고 있는 판국이다. 법과 국민감정을 고무줄 잣대처럼 늘렸다 줄였다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는, 이적행위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이번 사태가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에 대한 냉소를 더욱 깊게 했다는 사실이다. 김 원장은 2015년 3월 김영란법 처리를 주도하며 본회의서 법안 제안 설명까지 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김영란법을 무색케 하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는 사실은 이율배반이다.

김영란법은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회의원 자신들은 적용을 받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이 역시 내로남불이다. 니네들은 뇌물주고 받는 것이고 우리는 정당한 의정활동이라는 것이다. 권력 있는 사람들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다들 빠져나가고 힘없는 사람들만 솎아내는 법은 ‘악법’이다. 피감기관에서 수천만원 받아 해외여행 다닌 것은 죄가 아니어도 5만 원짜리 밥 얻어먹는 것이 죄가 된다면, 이건 코미디다.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 지금 청와대는 높은 지지율에 취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해임해야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반응이 ‘문재인 정부다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 이 정부는 ‘촛불정부다운’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결격사유로 가득한 인물들을 우격다짐으로 장관자리에 앉힐 때 엿보이던 ‘지나친 자신감’이 차츰 ‘오만과 독선’으로 무단 형질 변경되고 있다. ‘섣부른 김기식 구하기’는 문재인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을 비정상 사회로 다시 끌어내릴 수 있다.

‘김기식사태’를 한 보수언론의 지나친 공격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최선의 해결책은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이다. 어설프고 구차한 변명은 오히려 화를 키운다. 내로남불과 억지해명, 그리고 제 식구 감싸기가 국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스폰을 받아 실시한 외유를 ‘정당한 의원외교’라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실패한 로비’라며 면죄부를 줘서도 곤란하다. 일단 드러나면, 더 이상 로맨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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