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박상신 소설가의 남도일보 ‘남도시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명나라 때 우겸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3대에 걸쳐 황제를 보필하며 일생을 청백리(淸白吏)로 살았고 훗날 후대의 귀감이 된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황제의 명을 받고 하남 일대를 감찰한 후 귀경길에 오를 때의 일이다. 금은보화는 아니더라도 지방의 특산물이라도 가져가야 한다는 그 지방관의 간청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그 청을 거절했다. 그리고는 “석회음(石灰吟)”이란 시(詩)로 그의 뜻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그중 청풍양수(淸風兩袖)란 글귀가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청풍양수란 ‘양 소매에 맑은 바람’이란 뜻으로 자신이 입은 관복 소맷자락 속에 맑은 바람만 담고 황제를 알현, 그 예를 표하면 족하다는 의미로 더 이상 아무런 재물도 탐하지 않는 청렴(淸廉)을 뜻한다. 이는 목민관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청렴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근자에 들어 청풍양수란 글귀가 귓전에 맴도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난 9일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를 뇌물 및 횡령, 대통령기록물 위반 등 16가지 범죄혐의 피의자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뇌물혐의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매관매직(賣官賣職)혐의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회장(22억5000만원), 대보그룹(5억원), ABC상사(2억원), 비례대표 이소남(4억원) 전 의원 등에게 건네받은 수십억 원의 부정한 자금이 그 사례다. 그리고 국가기관으로부터 국민의 혈세(특수 활동비)를 뇌물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받아 챙긴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검찰 수사로 드러난 뇌물액수는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그것도 대통령의 직위에 오른 자가 일신의 영달과 사욕에 사로잡혀 불법 뇌물을 받아 챙기고, 그 대가로 목민관의 요직을 뇌물 공여자에게 매관한 정황과 증거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뇌물 상납으로 고위공직에 오른 그들, 그들의 재임 기간 그 기관의 업무는 가히 ‘상상 그 이상’의 불법과 부패가 만연했을 것이며 그들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목민관(牧民官)이란 어떤 자리인가.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뽑은 최고위 목민관이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이란 직위란 그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며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대통령직은 청풍양수와 같은 청렴과 도덕성은 기본이며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국민의 대표로 국정을 운영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하급 부서의 목민관들이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부실함과 부족함이 없는지를 끝없이 감찰하고 보살피는 최상위 권력의 운영 주체이다.

하지만 검찰의 통해 그가 통치한 공화국의 지난 5년은 어떠했던가?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이 금품 및 뇌물수수로 매관매직해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이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불법의 도구로밖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도 반성은커녕 구속 이후, 마치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독립투사처럼 자신의 인신구속을 ‘무술옥사’라 스스로 칭하며 자신의 범죄행위를 비루하게 정당화시키고, 자신의 구속을 정치투쟁으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수족처럼 도운 수하들까지 매몰차게 내치는 인면수심의 인간성마저 내비치고 말았다.

그는 16가지 범죄혐의로 기소됐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그가 재임 기간 행한 4자방(4대강, 자원외교비리, 방위산업비리) 비위에 대한 제보들이 솥뚜껑에 연기가 피어나듯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과연 그의 마음속엔 국가가, 국민이, 어떤 의미인가!

또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어디까지 더 치졸하고 비루해야 하는가! 이젠 그의 삐뚤어진 심성을 바라보며 높은 도덕성도, 청풍양수와 같은 청렴성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단지 범부(凡夫)로서 그에게 되묻고 싶다. 만약 그가 할아버지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손자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매스컴도, 검찰도, 현재 살아있는 권력도 아니다. 오롯이 국민이다.

국민의 바람은 그저 소소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진심 어린 반성이다. 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가 행할 수 있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이다. 중국 발 황사가 몰려오는 오늘 밤에도, 역사의 시계는 진실의 별을 향해 흐르고 또 흐른다. 그리고 그 시계의 시선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그분의 삐뚤어진 품행을 그저 주시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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