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전남 여수소방서장

생명을 살리는 성숙한 119신고

<김용호 전남 여수소방서장>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에서 “도로 위에 개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여성 소방관과 교육생들이 사고로 안타깝게 숨진 이후 소방관들의 출동 기준이 엄격해져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사실 과거부터 소방관 사이에서는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자조감이 든 출동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지붕 위 고양이를 잡아 달라”, “소가 집을 나갔다”, “자동차와 집 현관문을 열어 달라” 등 개인들이 해야 할 일을 119에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신고자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성이 없는 신고이다. 소위 생활안전 출동건수를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작년 한해 구조출동건수 80만 건 중 생활안전관련 출동건수가 42만 건으로 52.2%를 차지하고, 이중에서 벌집제거 15만 건(35.7%), 동물포획 12만 건(28.5%), 잠금장치개방 7만 건(16.6%) 순이었다. 동물포획 출동 중 고양이, 조류, 고라니 등과 같이 사람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출동도 5만 건(41.6%) 이나 된다.

위와 같이 포괄적으로 분류하여 표시하였지만, 세부적으로 신고내용을 보면 차마 이러한 신고까지 할 수 있는가 할 정도의 이기주의를 넘어간 막가파식 신고도 많다. “그런 것은 스스로 해결하셔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면 “만일 무슨 일 생기면 당신들이 모두 책임지라” 하며 청와대·소방청· 국민권익위 홈페이지에 올리겠다며 위협을 하는 사례가 많다. 직원들은 괜한 구설수에 오를까봐 현장으로 달려간다.

문제는 여기에서 일어난다. 1일 근무인원이 3∼4명인 119구조대가 긴급성이 없는 곳으로 출동을 나가다 보면, 정말 긴급한 화재 등 현장에서 핵심역할을 해야 함에도 실상 그 현장에 없고, 멀리에서 강아지를 잡고 있는 어이없는 업무를 하다가 인명구조를 하지 못하는 심각한 사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한 소방청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부족한 현장인력 속에서 생활안전출동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긴급성이 없는 단순한 민원은 거부하는 기준을 마련해 왔고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준안은 119로 들어오는 신고 접수 중에서 출동 거부기준을 상황별로 ‘긴급’, ‘잠재 긴급’, ‘비 긴급’으로 나누어 상황에 따라 ‘조치’, ‘요청거절’ 등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출동 거부기준이 현장에서 얼마나 가능할지에 대해 현장 소방관들은 실효성에 의심을 나타내고 있다. 소방 출동 거절의 세부기준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신고를 받는 119상황실 요원은 신고자의 전화 내용만으로는 비 긴급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가 부담스럽다. 현장에 가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구조내용이지만 신고 시에는 아주 위험한 상황인 것처럼 신고를 하는 게 대다수이고, 이러한 신고를 묵과할 수 없어 일단 출동을 시킬 수밖에 없다. 본인이 잘못 판단하여 출동 거부하여 민원이 제기되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소방관들은 곧 시행될 소방청의 생활안전 상황별 출동지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현실성 있는 것은 첫째, 분명 단순 해당민원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과 단체가 있으나, 일반 국민들은 모르기에 쉽게 119에 신고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의 개선으로 해당업무 기관의 적극적 홍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국민들이 119를 만능해결사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119는 항상 생명을 구하는 긴급 상황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존재라 생각하고, 비 긴급 신고 시에는 한 번 더 생각해 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