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풍경

이발소 풍경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들이 머리를 깎기 위해서는 이발소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남 이발관” 같은 촌스러운 상호나, 조금 더 촌스러우면 “미남 이용원” 같은 곳에 가서 “자주 오지 않아도 되게” 머리를 짧게 자르곤 했다. 구슬을 엮어서 만든 발을 젖히고 이발관에 들어가면 대개 두 세 개의 이발용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의자 앞에는 전신을 비출 만큼 커다란 거울이 벽에 붙어있고, 그 위에 액자가 두 개 쯤 걸려있었다.

시냇물이 흐르는 뒤쪽으로 초가집에 한 채가 서있고 평화롭게 풀을 뜯는 한 두 마리의 누렁소, 그리고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인 설산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하고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그 풍경화가 왜 동네 이발소마다 걸려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색에 깊이가 없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운 그림이었다.

그 그림 옆에는 대개 시의 한 구절을 액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시가 아니라 마치 잠언처럼 들리는 러시아의 문학가 푸시킨(Pushkin)의 시가 우리나라 방방곡곡 이발소 거울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 얼마나 우리를 배반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발소에 있는 동안에는 깎고 난 머리모양이 이상해도, 이발요금이 예상보다 많이 나와도, 또 목에 때가 있다고 머리 대신 뒷목을 빡빡 밀어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삶은 언제나 우리를 속일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인생이 힘들 때 화도 내지 말고, 울지도 말라고 하면, 푸시킨은 우리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이발소의 액자에 빠져있는 푸시킨의 시는 이렇게 계속된다.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리니.”

우리의 눈은 항상 위를 향하고 있고 우리의 발은 항상 아래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그 두 개의 차이로 해서 우리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간도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는 법이니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연속성에서 현재를 떼어놓고 보면 그 순간은 슬프고 괴로울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슬프지도 또 괴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간 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법이니, 현재에 좌절하지 말라는 푸시킨다운 제언이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시를 남긴 푸시킨 자신은 아름다운 아내 곤차로바의 마음을 빼앗아간 사내 단테스에게 결투를 청해서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3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치 세상을 다 살아본 사람처럼,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질투의 불길은 잡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만약 그가 자신이 쓴 시처럼 삶에게 “노여워 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았다면,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우리에게 더 많이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외치고, 시간을 삼킬 수 있었다면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을 것이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총론에는 반대가 없지만 각론에는 찬성이 없다고 말한다. “남 초상난 게 내 배 아픈 것만 하겠느냐”는 우리네 속담도 있다. 그만큼 원칙과 실천은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고, 남에게 들이댄 잣대를 자신에게 똑같이 적용하기 어려운 법이다. 처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교언영색으로 자신의 주장을 뒤집으려 하거나,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사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집권여당을 보면서 까까머리때 보았던 액자 속의 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충고대로 행동하지 못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던 시인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그 시를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