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70>-제6장 불타는 전투

마을을 벗어나 십리 하고도 두어 마장쯤 갔을 때, 꿩 꽁지털을 군모에 꽂아 휘날리며 길을 가는 왜군 무리를 발견했다. 꿩 꽁지털은 우리 관군의 계급장 표시의 하나인데 관군을 처치한 뒤 그 모자에서 뽑은 것을 대신 자신의 군모에 자랑스럽게 꽂고 걷는 것이었다.

왜 병사 둘이 창검한 채 앞서고, 가운데 짐꾼이 맨 가마가 뒤따르고, 그 뒤에 흰 옷을 입은 아낙 둘이 끈으로 묶인 채로 끌려가고, 맨 뒤에 왜 병사 둘이 창검을 한 채 뒤따르고 있었다. 왜 병사들이 백성을 납치해가는 전형적인 대형이었다.

정충신이 박대출과 두 청년에게 말했다.

“우리가 앞지릅시다. 저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끌고 강개 걸음이 느리요. 우리가 신속하게 움직이면 고개에 이르기 전에 추월할 수 있소. 나를 따르시오. 저쪽 고개 쯤에서 올라오는 놈들을 아작내버립시다.”

박대출이 알아차리고 청년들은 향해 손짓으로 뒤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숲속으로 사라지자 주위는 더욱 고요적막했다. 산길을 뛰어올라 고개에 이르러 매복해 있을 때, 왜의 병사들이 철거덕철거덕 쇠창을 땅바닥에 구르며 재를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정들은 조련을 받은 듯 언덕을 오르는데도 발걸음이 규칙적이었다.

“빨리 가자우! 조센징은 느린 게 탈이다.”

끌려가는 사람보다 끌고 가는 사람들이 더 지치게 마련이다. 그들도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며 땀을 쏟고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정충신이 손을 들어 힘껏 허공을 가르자 박대출과 청년이 선두의 왜 병졸을 기습했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한 놈의 목을 베자 다른 놈이 주춤거렸으나 박대출이 날렵하게 그의 배를 단검으로 갈랐다. 뒷놈은 정충신과 다른 청년이 맡았다. 왜 병사가 창검을 겨루었으나 정충신의 동작이 빨랐다. 왜병은 이런 기습은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마을을 휩쓸고 관아 사람들을 때려잡고, 백성들을 패면서 지배자의 희열에 젖어있기만 했는데 처음 당하는 기습인지라 어리둥절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중에 다른 한 놈이 창검을 휘둘러 허공을 가르자 순간 정충신이 벼락같이 외쳤다.

“찔러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왜 병사가 배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을 청년의 검이 왜 병사의 목에 꽂혔다. 그가 쓰러지자 다른 마을 청년이 허리에서 쇠좆매를 뽑아들어 왜 병사의 면상을 갈겼다. 얼굴이 좌악 찢어지면서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박대출이 다가가 철곤으로 왜 병사의 두상을 내려치자 머리가 으깨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정충신이 가마꾼들에게 말했다.

“한번 더 독(돌)으로 박살내시오.”

가마꾼들이 돌변하더니 복수심에 불탄 얼굴로 개울가에서 큼지막한 돌을 들고와 쓰러진 왜 병사의 머리에 내려쳤다. 그들은 네 구의 시체를 옆 개굴창으로 옮겼다. 정충신이 왜 병졸들의 옷과 무기들을 수습하고 구덩이를 파 묻었다. 가마 속의 신부는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묶인 채로 끌려가던 아낙네들이 넋을 잃고 왜병 해치우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포승줄을 풀어주자 그제서야 땅바닥에 절푸덕 쓰러지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살았다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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