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다니…한반도를 뒤덮은 감격의 물결

최혁 남도일보 주필이 바라본 남북정상회담

이런 날이 오다니…한반도를 뒤덮은 감격의 물결
 

판문점 남쪽 지역 경계에 서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기다렸다.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문 대통령을 향해 걸어왔다. 그런 김 위원장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사적 의미를 띠는 만남이기에 긴장이 안 될 리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은 여유가 넘쳤다.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두 정상의 모습에서 여유와 대범함을 느꼈다.

두 정상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웃었다. 그리고 반갑게 다가선 뒤 굳게 손을 잡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사말을 건네며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판문점 남측지역 방문을 ‘용단’이라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웃음 띤 얼굴로 몇 마디를 나눴다. 그러다가 두 정상은 짧은 시간에 군사분계선 남쪽과 북쪽을 넘나드는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상징적인 월경(越境)이었다. 이제는 남과 북이 막힌 땅이 아니라, 쉽게 오갈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라는 다짐과 희망을 남북한 한민족과 전 세계인들 앞에 약속한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북쪽으로 잠시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감동했다. 가슴 한켠에, “진즉에 저리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절로 피어났다.

문 대통령의 월경은 예정에 없던 일로 상당한 파격이었다. 두 정상의 열린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 일이었다. 이 장면과 관련해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밝힌 두정상간의 대화는 이랬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 (김 위원장과 첫 악수를 하며) “남측으로 오셨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는가?”

김 위원장: (군사분계선을 건너 남측으로 넘어온 뒤 문 대통령에게)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이후 김 위원장은 깜짝 제안을 한 뒤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북쪽으로 넘어갔다)

이후 두 정상은 바로 남쪽으로 넘어와 환영식장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이 남측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를 사열한 것은 우리 정부가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상응하는 일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일렬로 도열한 북측 수행원을 소개하는 도중에 일어났다. 군복차림의 리명수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 등 북한군 수뇌부가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한 것이다.

북한군 최고 수뇌부가 남한 국군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에게 경례를 한 것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던 일이다. 이는 북한군부가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한반도 평화에 참여하겠다는 상징적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북한 군부 강경파들은 무력적화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각종 도발을 일삼아왔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까지도 통제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강경파 북한군부인사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군 수뇌부가 문 대통령에 경례를 한 것은 김 위원장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첫 만남부터 화기애애했던 만큼 두 정상이 ‘통 큰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은 이른 아침부터 제기됐다. 아니나 다를까, 두 정상은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남북한이 공존 공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내놓았다. 핵심은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이다. 남북한뿐만 아니라 세계를 절망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전력을 포기하는 대신, 존중과 지원 가운데 남북한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방안을 찾아내고 이에 합의한 것이다.

두 정상은 올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를 가시화하기 위해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추진키로 했다. 남북의 주도아래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동의와 협조를 받아내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이뤄가기로 한 것이다. 두 정상이 발표한 13개 항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과 이를 위한 노력은 한반도 운명에 있어 획기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70여 년 동안 남북한 간에 벌어진 이념적 갈등과 대립, 서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불신과 권력욕, 그리고 무력통일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 정상은 그런 참혹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북한 정상은 이번까지 세 차례 만났다. 그러나 과거 두 번의 만남은 부푼 희망만 안겨주고 결과적으로는 속절없이 끝났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아니 다를 것이라는 느낌이 짙다. 진정성이 엿보인다.

오늘만큼은 ‘허허실실’을 조심해야 한다는, 그런 말은 하기 싫다. 두 정상이 만나 굳게 손을 잡고, 남북을 넘나들며 웃고, 함께 미소를 지으며 합의문을 읽어가는, 그런 모습만 되풀이해 보고 싶다. 감동의 날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을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이든 분들은 “살다보니까 이런 날도 온다”며 감격해 했다. “김정은이가 어찌 저럴 줄 알았을까?”하며 놀란 이들도 많다. 얼마 뒤에는 “진짜였네, 모든 게 진짜였네~”그런 말들이 오갔으면 싶다. 한반도에 기쁨과 감격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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