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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84>-제6장 불타는 전투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84>-제6장 불타는 전투

정충신이 내민 더덕뿌리를 받은 그녀 눈에 눈물이 어렸다.

“나는 막영을 돌아봐야 항개 자주 보들 못합니다.”

그가 몸을 돌려 숲으로 사라지려 하자 소연이 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제 말씀 들어보셔요.”

정충신이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님이 절더러 관기로 가라고 하셨어요.”

“네?”

전혀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옛 사람들이 일찍이 ‘여무이부(女無二夫)하고 신무이주(臣無二主)’라고 하였다고, 아버님께서 남편을 잃었으니 관기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정충신은 불쑥 화가 나서 일단 저지했는데, 막상 말해놓고 보니 쑥스러웠다.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가. 뒷감당이 막연했다.

“아버님은 한 여인네에게 두 남편이 있을 수 없고, 한 신하에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했나이다. 남편을 잃은 여인네는 평생 수절해야 한다는 것이어요.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제 나이가 아깝고, 육체가 무르익어가니 수절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관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인근의 주달문의 딸 논개도 아비가 지병으로 가산이 몰락하자 진주목 관기로 갔다고 하옵니다.”

“안됩니다.” 정충신이 단호히 말했다. “고려에서 벼슬을 하던 길재라는 신하가 충절을 바꾸어 조선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한 말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고것은 여인네를 잡아가두는 몹쓸 삼강오륜이고 족쇄잉개요.”

“그렇다면 낭군님은 그런 정절을 안지켜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소연이 당돌하게 물었다. 정충신은 주춤했다. 그녀의 도발적 언사가 놀라웠다. 나라의 윤리를 부정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다니, 자칫하면 대역죄인이 되는 것이다. 정해진 윤리는 따라야 하고, 그래서 그것을 당연시했으며, 부정하면 개피 본다. 충효가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닌 것은 아니다. 여자를 얽어매는 구조는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옳지 않다. 정충신은 혼란스러웠다. 대답이 없자 소연이 다시 물었다.

“왜 그걸 지켜야 하지요?”

질문과 답변의 입장이 어느새 바뀌어버렸다. 그래도 그는 제도권 안에서 녹봉을 먹고 있는 공인이 아닌가.

“나라가 시킹개요.”

“지킬 가치가 없는 것도 나라가 시킹개 지킨다고요?

“그럼 여자가 재가하고, 또 재가해도 된다는 말씀이시요? 망측하지 않나요?”

“왜 망측하죠?”

여인을 억누르고 자유를 속박하는 윤리관. 조선조가 들어선 지 200년이 되었지만 조선은 인류의 반쪽이 없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라 돌아가는 꼴이 개판이 된 것이 아닐까. 소연은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었다. 정충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허구고 위선이다. 쓸데없는 격식을 관념화하고, 그것이 사람을 지배하고, 삶을 피폐하게 하고, 위선에 갇혀 살게 한다. 정충신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사랑의 감정을 쏙 뽑아내고, 됫박 같은 틀속에 사람의 이성을 가두고 박제화한다. 똑같이 하늘 아래 태어났는데 여자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속박 속에서 천형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 것을 입밖에 내면 처벌을 받는다. 때로 반역이 되고, 잡혀가 국문에 시달린다. 도대체 그것이 뭐길래?

마음이 끌리는 이 여자 앞에서 진실해지고 싶다.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이팔청춘, 마음이 끌리는대로 가고 싶다. 소연, 가면 안된다. 왜 가야 하는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여자가 관기로 끌려가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제도라는 틀에 갇혀서 끌려가는 것을 방치해도 된단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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