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특집>아픈 역사 거울삼아 평화·통일의 길로…
흑백 사진속에 남겨진 남북 분단의 상처
이경모 흑백 사진 화보
“시간의 흔적 맛보는 즐거움”
이경모 선생의 사진 인생 50년은 그대로 대한민국 사진 50년의 역사였고, 그 50년의 대한민국 사진역사는 격동의 50년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선생은 해방직후부터 6.25까지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한 사진을 모아 ‘격동기의 현장’(눈빛 1989년) 이란 사진집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 선생의 사진은 격동의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자기세계를 조용히 펼쳐왔다는 평가도 많다. 이 선생의 관조적이고 유교적인 일종의 은둔·군자적 영상은 호남 명문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형성된 선비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기록이라는데 상당히 어찌보면 본능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사진집 보도사진으로 실린 사진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귀중한 기록으로,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격동의 시기에 찍은 사진들은 당시 열악한 사진현실과 그 격동기의 험난한 시대상황을 겪으면서도 화질에 아무런 손상이 없어 마치 어제 찍어 현상한 것처럼 깨끗하다. 그는 중학생때 그린 그림까지도 보관할 정도로 기록과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그래서 해방 당시 그 어수선하고, 한편으로 활기 넘친 상황을 기록하고 보관해서 오늘에 전해주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격동의 현장에서 실린 사진들은 마치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착각과 함께 우리가 살아온 현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오늘의 우리가 대견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농촌 스케치에 실린 사진들은 하나 같이 정겨운 고향 풍물들이어서 기록이라는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도사진과 함께 농촌스케치도 서정성과 정취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광양시와 광양시문화원이 염원하고 있는 ‘이경모 사진 전시관’ 조성 사업이 하루빨리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이경모 선생 연보
▲1926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남
▲1939년 광양보통학교 졸업·광주고보 입학
▲1944년 광주서중 4학년때 전남여고 전신인 욱(旭)고녀 2학년생 김영혜씨와 결혼
▲1944년 광주서중 재학중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문 입상
▲1945년 광주서중 졸업
▲1946 노산 이은상 선생 주선으로 호남신문사 사진부장 취임
▲1946년 해방기념전남예술사진전 특선
▲1948년 10월 호남신문 사진부장으로 여수순천사건 종군 취재
▲1948년 12월 제2회 전국예술사진공모전 특선
▲1949년 5월 제1회 전국어린이사진전 우수상
▲1950년 8월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 문관 6.25 종군
▲1951년 4월 한국사진신문사 사진부장
▲1953년 8월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1955년 9월 국제보도연맹 이사
▲1964년~71년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교육과 강사
▲1964년~81년 국전 사진부 심사위원
▲1966년~69년 이화여대 시청각교육과 강사
▲1968년~76년 새한칼러 전무이사
▲1969년~81년 국전 추대작가·운영위원
▲1979년~86년 이화칼러 대표 이사장
▲1984년~88년 KBS 사진대전 심사위원장
▲1986년 세계일주 촬영여행
▲1988년~93년 동아국제사진살롱 심사위원장
▲1992년 화관문화훈장 수훈
▲1995년 이경모 고희기념사진전
▲1996년 광양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초대전
▲1997년 금호예술상 수상
▲1998년 자랑스런 전남인상 수상
▲1998년 동신대 객원 교수
▲2001년 5월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