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86>-제6장 불타는 전투

깔딱재를 돌파한 왜의 제6군단 4대가 이치재 마루턱까지 치고 올라왔다. 나무를 베어 목책을 세우고 적의 예상 진출로에 쇠마름쇠, 철질려를 깔아놓았으나 허사였다. 그런 정도는 장애물도 아니라는 듯 적병은 간단없이 부수고 올라왔다.

“화살과 탄약을 비축해놓은 은신처를 급습하라.”

왜 야전장이 소리쳤다. 그는 조선 방어군의 허수(虛數)전략에 한때 농락당한 것이 불쾌했다. 몇 개의 능선을 점령하면서 연기를 피워 올린 봉화터를 발견하고 그들의 위장술에 감쪽같이 속은 것에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왜의 제5대는 별도로 대장간을 향해 일제히 오르기 시작했다.

“저곳 조선군 병기창과 탄약고를 부숴야 무기를 노획할 수 있다!”

그러나 박대출도 왜병들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왜병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것들 기언시 올라온다. 우덜도 시작해보는 것이여!”

대장간 바로 아래에는 크게 돌출한 바위가 있었다. 그것을 흔들어 밀어 떨어뜨리면 적병들이 모두 깔릴 것이다. 적병들은 바위에 은신처를 만들 요량으로 바위 쪽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박대출, 김막돌, 쇠골이 등 10여명의 대장간 장졸들이 바위로 달려들었다. 바위를 밀었으나 끄떡하지 않았다.

“쇠골아, 삽 가지고 따라오니라.”

박대출이 삽을 들고 앞서 내려가 바위 뿌리가 박혀있는 밑을 파기 시작했다. 쇠골이도 뒤따라와 삽질을 했다.

“밑둥이 꽤 깊이 박혀부렀다. 윗채가 흔들릴 때까정 파란 말이다.”

이윽고 바위 사면이 드러났다. 위에서 흔들자 바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님, 위험하요!”

위에서 김막돌이 소리쳤지만 박대출은 땅파는 일을 계속했다. 왜병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들이닥치면 끝장이다.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장간이 함락되면 아군이 갖고 있는 절대량의 무기를 털리게 된다.

“쇠골아, 조금만 더 파자. 조금만 더 파부러.”

“대출 성님, 위험하요. 피하시오.”

위에서 다시 김막돌이 다급하게 외쳤다. 바위는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 날쌘돌이여. 신경쓰들 말고 밀어라! 허벌나게 밀어부러!”

박대출이 소리치자 바위가 더 크게 움직였다.

“조금 더 세게 밀어부러! 나는 옆으로 구르면 된개 내 걱정은 하덜 말고 당차게 밀어부러!”

바위덩어리가 움직이는가 하는 때에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더니 그대로 박대출과 쇠골이를 깔아뭉개고 밑으로 굴렀다. 잠깐 사이의 일이었다.

“으아악…”

왜병 수백 명이 바위에 깔리고 치이고 밀리면서 이윽고 바위덩어리가 백여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성님, 이게 무슨 꼴이요!”

김막돌이 절규하듯 외쳤지만 그도 적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박대출과 김막돌의 신체는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바위덩어리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쿵 쿵 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 산 저 산으로 길게 메아리가 져 흩어질 뿐이었다. 낙석 바위들이 한동안 우박처럼 쏟아져내렸다. 왜 병졸 백여 명이 또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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