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을 희망으로 38년 버텨…꼭 찾아 달라”

5·18 행불자 묘역 ‘썰렁’…찾는 발걸음 드문 드문

이낙연 총리, 기념식 후 가장 먼저 방문 진실규명 약속

“행불자 찾기 여전 미진…진상조사위서 실체 밝혀내길”

제 38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지난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신 묘역) 한켠에 마련된 ‘행방불명자 묘역’에선 한 여성 방문객이 찾아와 67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둘러보고 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신 묘역) 한켠엔 비석만 존재하는 67기의 묘지가 있다. ‘1묘역 10구역’ 또는 ‘행방불명자(이하 행불자) 묘역’이라 불리는 이곳은 다른 구역 묘들과 달리 봉분이 없다. 5·18 당시 사라진 이들을 기리기 위한 가묘이기 때문이다.

38주년 광주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마무리 된 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이 총리는 5·18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나이로 숨진 고 이창현 군의 비석을 향해 묵념을 했다. 이 군의 아버지 이귀복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행불자 흔적을 찾아 5·18 진실 규명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 총리가 떠난 후 불과 5분 뒤 이 행불자 묘역엔 적막감만 감돌았다. 찾는 이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이날 기념식에 방문한 이들은 희생자 유가족, 정치인, 일반 시민 등 약 5천 여명으로 추산됐다. 그럼에도 기념식 이후 행불자 묘역을 찾는 사람은 일부 취재진을 제외하곤 거의 볼 수 없었다. 드문드문 2~3명 정도가 무리지어 추모 할 뿐 발걸음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행불자 묘역은 일년에 딱 하루 뿐인 기념식에서조차 관심 받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행불자 묘역에 아들이 묻혔다는 한 어머니의 절규가 더 안타깝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차초강(79)씨는 “5·18 당시 계엄군들의 군용 트럭에 실려 사라진 아들(당시 19세)을 찾아왔다”며 “자식을 보낸 뒤 하루도 편히 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시체도 찾지 못해 한스럽다”며 “그래도 시체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들이 어디 살아있을 거란 희망으로 38년 세월을 보냈다. 정부가 꼭 아들을 찾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씨의 38년 묵은 한을 풀어줄 수 방법은 5·18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동안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회청문회(1988년), 검찰조사(1995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2010년), 국방부특별조사위원회(2018년)조사가 진행됐다. 정부 차원의 5차례에 걸친 대대적 조사가 진행 됐지만 행불자 실체는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해 5·18 재단 등이 주축이 돼 진행된 암매장 추정지 발굴 작업에서도 행불자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공식적으로 접수된 5·18 행불자는 242명이다. 이 가운데 82명은 광주시로부터 행불자로 인정받았다. 82명 중 유전자 및 행적 분석 등으로 확인된 사람은 6명이 전부다. 나머지 76명은 공식 행불자로 등록돼 있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될 5·18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6번째 조사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이날 기념식장에 참석한 한 시민은 “38년전 사라진 이들에 대한 조사가 여전히 미진하다. 행불자의 규모와 실체, 그리고 각종 의혹들이 이제는 규명돼야 한다”며 “더 나아가 5·18 학살의 주체, 성폭행 등 인권 유린 범죄 행위 등을 일으킨 책임자의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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